올해부터 문‧이과 통합 체제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실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국어, 수학 영역의 등급별 선택과목 비율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두 영역 상위권을 이과 학생들이 싹쓸이하고 있는 만큼 비율이라도 공개해서 혼선을 줄이자는 일선 교사들의 요구를 외면한 것이어서 논란이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29일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를 발표하며 "선택과목별로 국어, 수학 영역의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앞으로도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이과 구분을 없애고 선택과목을 늘린 건 개개인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하자는 취지인데, 선택과목별 쏠림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교육적이지 않을뿐더러 유불리를 따져 선택과목을 바꾸는 학생이 여럿이면 더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문·이과 통합 수능 체제는 국어와 수학 영역에서 문·이과 구분을 없애고 '공통과목(75%)+선택과목(25%)'으로 치른다. 응시생의 위치는 표준점수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되는데, 이 때문에 같은 점수를 받아도 선택과목별로 표준점수와 등급컷이 달라진다. 입시업체는 물론, 고교 진학지도 교사들조차 ‘등급별 선택과목 비율’을 공개해달라는 이유다.
정부도 이런 요구를 알고 있다. 이미 지난 3, 4월 고3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치른 모의평가에서도 수학 1등급(상위 4% 이내) 학생의 약 94%가 이과생이 주로 치르는 ‘미적분’(88.53%) 또는 ‘기하’(5.5%)를 선택했고, 이 때문에 문과생이 주로 보는 ‘확률과 통계’를 택한 학생은 더 낮은 표준점수를 받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올해 모의평가에서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학생은 3월 60.5%에서 6월 55.4%로 계속 감소세다. 반면 미적분 선택 학생은 3월 33.7%에서 6월 37.1%로 늘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소장은 “5%p 정도의 학생들이 미적분·기하를 선택한 건 수학 실력이 좋은 인문계 학생들의 전략 때문"이라 분석했다.
평가원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한 관계자는 “각계 의견수렴 때 비공개 방침이 입시정보를 제한해 사교육 의존과 진학지도의 어려움을 키운다는 의견이 있었다”거나 “의견 수렴 때 현장 교사들은 공개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고도 인정했다. 하지만 끝내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교육당국의 ‘깜깜이 채점’으로 당장 학교 현장에서는 입시지도에 비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소속 한 교사는 “정시 합격생이 많은 고교를 중심으로 가능한 한 많은 학생 성적 정보를 수집해 교사들이 자체 분석하는 게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6월 모평 응시생은 39만9,818명이었다. 재학생은 34만2,630명, 졸업생과 검정고시 합격자 등은 5만7,188명으로 재학생, 졸업생 모두 지난해보다 소폭 증가했다. 표준점수 최고점과 1등급컷을 기준으로 국어(최고 146점, 등급컷 132점), 수학(최고 146점, 등급컷 134점), 영어 모두 다소 어렵게 출제됐다. 절대 평가로 치르는 영어는 90점 이상인 1등급 비율이 5.51%로, 지난해 수능(12.66%)보다 절반 이상 쪼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