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아봐야 남는 게 없습니다"…삼중고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

입력
2021.06.30 13:00
①원자재값 급등②내수침체③중물류난 지속
원자재값 오르지만 납품단가 인상은 언감생심
"대기업 손실 떠넘기기에 흑자도산 우려"
중소유통물류센터, 재난지원금 소진 후 매출 20%↓

"아무리 팔아봐야 남는 게 없습니다."

경남 김해에서 청동이나 황동 등의 동합금 부품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 중인 중소기업의 임원 A씨가 전한 최근 분위기는 공황상태(패닉)에 가까웠다. 원자개 가격 상승으로 물건을 팔아봐야 손에 쥐는 건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회사가 생산하는 주요 제품들은 원재료인 구리값이 납품가의 60%를 차지한다. 1년 넘게 구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생산가가 납품가를 웃돈 지는 오래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구리 현물 가격은 올해 5월 14일엔 1만724.5달러로 최근 10년 동안 기록한 최고치도 갈아치웠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납품가도 올라야 정상이지만, 대기업을 상대하는 중소기업에겐 사실상 불가능하다. A씨는 "중소 제조기업들은 원자재를 살 때는 비싼 시가로 현금을 주고 사는데, 납품 대금은 대기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어음이나 정기결제로 받기 때문에 유동성 부족으로 흑자도산 위기에 처했다"며 "대형 조선사들의 경우 중소기업이 발주 단가 인상을 요청하면 '우리도 죽겠다'며 저가 수주의 손실을 중소기업에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들은 삼중고에 허덕이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뿐 아니라, 해상 운임 고공행진과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떨어질 줄 모르는 해운 운임도 수출입 중소기업에겐 치명타로 이어지고 있다. 26일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009년 10월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인 3,785.4를 기록했고, 벌크선 운임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 역시 이달 17일 3,267로 2010년 6월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 같은 악재들은 고스란히 중소기업의 경기 전망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15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기전망조사에서 경기전망지수가 2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들이 꼽은 주요 애로요인으로는 내수부진(59.4%·복수응답)의 비중이 가장 높았고, 업체 간 과당경쟁(41.3%), 원자재 가격 상승(40.7%), 인건비 상승(38.8%) 등이 뒤를 이었다.

비제조업의 상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 차원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1년 가까이 이어지면서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 3만여 곳의 슈퍼마켓에 물품을 공급하는 44곳의 중소유통물류센터는 지난해에 비해 평균 매출이 20%가량 떨어졌다.

임원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반짝 좋아졌던 내수 경기가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며 "특히 식당 영업시간이 끝나는 10시 이후 매출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다음 달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부 완화되고 정부도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내수 경기 회복을 장담할 순 없는 형편이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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