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인간

입력
2021.07.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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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루이 블레리오


중력의 숙명에 묶인 인류가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는"(황인숙 1988년 출간 시집 제목) 새를 동경한 세월은 아마도 존재의 시간과 겹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나는 기계를 구상한 이래, 아니 이카루스의 신화시대부터 비상의 노력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이들에 의해 이어져왔을 것이다.

인류가 기억하는 최초의 비상(飛上)은 18세기 프랑스 발명가 조제프 미셸 몽골피에의 열기구가 이루었다. 1783년 6월, 공기보다 가벼운 수소를 채운 그의 열기구가 파리 하늘을 가로질렀다. 물론 열기구는 다만 떠올랐고, 길을 낸 건 바람이었다.

1852년 앙리 지파르는 25마력 증기엔진과 프로펠러를 단 동력비행선을 제작했다. 사람이 탑승할 수 있는 곤돌라를 매단, 인류 최초의 여객기였던 그의 비행선은 최고속도가 시속 10㎞여서 작은 바람에도 갈팡질팡했다. 라이트 형제가 날개와 후면 프로펠러를 단 동력비행기를 만든 건 1903년. 비상의 '벨 에포크' 시대가 열렸다.

프랑스 이공계 그랑제콜인 '에콜 상트랄 파리(ECP)'를 졸업한 공학자 루이 블레리오(Louis C.J. Bleriot, 1872.7.1~ 1936.8.1)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아세틸렌 발전기를 이용한 최초의 차량용 헤드램프를 개발해 큰돈을 번 그는 모든 시간과 돈과 목숨을 비행기 개발에 쏟았고, 1907년 11월 그의 7호기가 마침내 비행다운 비행에 성공했다.

1908년 한 영국 일간지(London Daily Mail)가 영국해협 최초 횡단 비행에 1,000파운드의 상금을 걸었다. 도전과 실패가 이어지던 1911년 7월 25일, 블레리오는 단엽기 '블레리오 11호기'로 프랑스 칼레 인근에서 이륙해 37분 만에 영국 도버에 착륙했다. 최초의 국제 비행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그의 비행은 국경을 넘나드는 유럽통합의 상징이었다. 츠바이크는 민족을 넘어 인류애를 향한 '감정의 비상'이라고 회고했다. 그 비행 기술이 살육의 기술이 되리라 짐작한 이는 드물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