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이 ‘내우외환’에 빠졌다.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불안한 휴전 상태를 이어가는 와중에,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반(反)정부 활동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거센 내부 저항에 직면했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을 향해 이례적으로 ‘퇴진’ 요구까지 나올 정도로 사태가 심상치 않다.
28일(현지시간) 현지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전날까지 나흘째 PA 임시 행정수도인 라말라와 베들레헴 등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서 PA 정권의 부정부패를 비판해 온 활동가 니자르 바나트가 지난 24일 팔레스타인 보안군에 끌려간 뒤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시위대는 바나트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면서 책임자 처벌과 아바스 수반의 퇴진을 외쳤다. 다급해진 PA 정부가 수사 개시를 약속했지만, 성난 군중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숨진 바나트의 머리와 가슴, 목, 다리, 손 등 전신 곳곳엔 구타의 흔적이 또렷했다. 부검의는 “체포 이후 사망까지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는 소견을 내놨다. 고문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위 과정에서도 연일 부상자가 속출했다. 보안군은 최루탄을 쏘며 강경 진압에 나섰고, 시위 참가자들은 돌을 던지며 맞섰다. 라말라에선 시위대가 아바스 수반의 집무실을 향해 행진도 시도했다. 가자 지구에 위치한 알아자르대학 정치학 부교수 음카이마르 아부사다는 “국제적 지지를 받는 PA가 부패와 권위주의 탓에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며 “시위대가 정부 수반 퇴진을 요구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PA 노동장관이자 좌파 인민당 대표인 나스리 아부자이쉬는 이날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아바스 수반이 이끄는 집권당 파타와 연립정부를 꾸렸던 인민당은 “법과 공공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PA 연정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고 AFP통신에 입장을 밝혔다. 국정 파트너마저 등을 돌리면서 아바스 수반의 입지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사망한 바나트는 5월로 예정돼 있던 총선에도 입후보한 상태였다. 당초 PA는 하마스와 15년 만에 통합 총선을 치르기로 했었으나, 패배를 우려하던 아바스 수반이 돌연 선거를 무기한 연기했다. 인권단체 알하크의 활동가 쇼완 자바린은 알자지라방송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유대인 정착촌 내 팔레스타인 추방에 맞서 힘을 모아야 할 때에 팔레스타인이 분열하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