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전은 6·25 71주년, 이틀 뒤인 7월 1일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절로 중공군 참전으로 인한 6·25전쟁의 참상이 떠오른다.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했지만, 30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6·25를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지원한(抗美援朝) 전쟁’이라고 한다. 겉만 번드르르한 한중 관계를 보여준다. 애당초 중국의 생각을 모른 채, 혼자 열을 내며 친구 타령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중국인도 자국의 정신사를 오독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사상가 이택후(李澤厚, 참고로 그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의 주류 학계에서 심성(心性)과 도덕이론으로 유학을 개괄하는 것은 오류가 있다. 공자·맹자는 사회·정치적 문제를 더 중시했다. 성악설 때문에 순자를 무시한 것과 심성을 다루지 않았다고 동중서(董仲舒, B.C.179-104)로 대표되는 한(漢)나라 유학을 부정한 것도 오류이다.”
유학에 성리학만 있는 것이 아니며 순자와 동중서 계열 학문이 중국에 끼친 영향이 지대함을 지적했다. 동중서는 순자에 비해 지명도는 낮지만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와 관련하여 중국의 대외 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한 대목을 소개한다. 동중서의 임금이었던 한나라 무제(武帝, B.C.156-87)는 무력과 외교를 겸한 대외 확장 정책을 처음으로 시행한 황제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대일로(一帶一路)도 그에게서 비롯됐다. 무제 당시 최고 학문은 ‘춘추학’이었고, 최고의 스타 지식인은 동중서와 사마상여(司馬相如)였다. 동중서는 춘추공양학의 ‘대일통(大一統)’을 선양하고 유학자의 으뜸(儒宗)이라 불렸지만 중앙 정계 진출은 실패했다. 이런저런 해석이 분분하지만, “사해의 오랑캐가 성덕을 듣고 와서 모두 신하가 된다”고 덕화(德化)를 주장한 것이 거슬리지 않았나 싶다. 반면 문학가 사마상여는 평생 황제의 측근으로 지냈는데 “강한 군대를 보내 오랑캐를 치니 사방이 감화되었습니다. 백성이 수고로울지라도 어찌 그칠 수 있겠습니까”라며 무력에 의한 대일통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동중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바쁜 말년을 보냈지만, 사마상여는 시종 풍족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대일통’을 지향하는 중화제국은 “모든 나라가 와서 고개를 조아린다(萬邦來朝)”를 목표로 삼았다. 조선왕조도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방미 결과를 중국에 보고하자고 했던 모 의원을 보니 자신을 조선 시대 신하로 착각하는 양반이다. 말이 나온 김에 수교 이래 정부의 대중국 메시지를 보면, 해리 프랑크퍼트(Harry G. Frankfurt)의 ‘헛소리에 관하여’가 떠오른다.
여기서 그는 헛소리와 거짓말을 구분하며 헛소리가 거짓말보다 위험하다고 말한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진실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는 반면,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에만 관심이 있고, 그 말의 합리성 여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는 진리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니라 헛소리라고 했다.
이상과 같은 명료한 기준이 있지만, 중공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통상적 덕담’, ‘신년인사’라는 청와대 해명을 겹쳐보면, 프랑크퍼트조차도 헷갈릴 것이다.
외교에 생존이 걸려 있는 판에, 권력과 친한 자를 대사로 보낼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저들의 역사와 문화에 능통하고 속내를 줄줄 꿰는 귀신같은 인물을 보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외교를 보면 이래저래 갑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