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김기표(49)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이 제출한 사표를 즉각 수용했다.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을 통해 김 전 비서관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지 이틀 만으로, 사실상의 경질이다. 대통령의 참모, 그것도 '공직자 부패 엄단'을 전담하는 비서관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민심에 불을 지를 조짐을 보이자 서둘러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상당한 잔불이 남았다. 김 전 비서관은 39억 2,0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는데, 부동산 재산이 91억2,000만원이고 부동산 구입을 위한 금융 채무가 총 54억 6,000만원에 달한다. 청와대는 올해 3월 김 비서관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비정상적 내역을 확인하고도 ‘문제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인사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잇달았지만, 청와대는 27일 "청와대 검증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며 다소 안이한 해명을 내놨다.
김 전 비서관은 경기 분당 아파트(14억5,000만원)와 서울 마곡동 상가 2채(65억4,800만원), 경기 광주 송정동 임야(4,970만원) 등 총 91억 2,623만원 상당의 부동산 재산을 갖고 있다. 이 중 마곡동 상가 구입을 위해 53억6,215만원(KEB하나은행)을 대출 받은 것은 '공직자 윤리에 맞지 않는 투자'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투자'라는 비판을 샀다.
경기 광주 송정엔 도로가 닿지 않는 임야(맹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송정지구 개발'로 신축 중인 아파트ㆍ고급 빌라 단지와 약 1㎞ 떨어진 곳이다. 임야 구입 시점은 2017년 6월이고, 광주시가 개발 계획을 승인한 건 2018년 8월이어서 투기 의심을 샀다. 김 전 비서관은 26일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지인의 요청 때문에 부득이하게 샀다"는 입장문을 냈지만, 논란을 잠재우지 못했다.
청와대 인사·민정라인은 김 비서관의 부동산 내역을 알고 있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인사검증 과정에서 김 비서관의 부동산 취득 경위와 자금 조달 방식을 구체적으로 점검했다”며 “투기 목적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국민의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며 고강도 정책을 펴온 청와대가 자체 인사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청와대는 김 전 비서관 사퇴에 대해 “인사검증 부실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청와대 검증 시스템은 완전하지 않다” “인사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까지 알 수는 없다”고 했다. 인사를 비롯한 국정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청와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도 도마에 올랐다. 반부패비서관은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들어 신설된 자리로, 도덕성 논란 꺼리가 없는 인사가 맡는 것이 순리다. 더구나 김 전 비서관이 임명된 올해 3월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공직자의 부동산 검증 잣대가 한층 높아진 시기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전 비서관을 감싸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김 전 비서관 교체를 결단하기에 앞서 '교체 불가피' 의견을 물밑에서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영길 대표는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그는 27일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 “김 전 비서관이 50억원이 넘는 돈을 빌려 투자한 것은 법률적 하자가 없다 해도 적절하지 않다”며 “청와대가 너무 안이하게 인사 검증을 한 것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