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아프면 쉬라"지만, 회사는 "출근해"... 노동 양극화 가속

입력
2021.06.2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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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5인 미만 사업장 더 큰 타격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취약계층 지원 필요"

#1. A씨는 직장 동료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고열에 근육통까지 코로나19 증상과 비슷한 데다 이 동료는 얼마 전 확진자와 식사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는 그 직원에게 코로나19 검사만 받고 다시 출근하게 했다. A씨는 "휴가를 주지 않고 다시 회사로 오게 해 결국 추가 확진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2. B씨가 회사에 다닌 기간은 10년. 지난해 회사는 코로나19로 매출이 떨어졌다며 직원들과 상의도 없이 출근 일수를 줄이고 월급을 깎았다. 올해 들어 코로나19가 안정되자 출근 일수는 늘었지만. 월급은 그대로다. B씨는 "먹고살기 힘들어 그만두려 하는데 줄어든 월급으로 퇴직금을 받으려니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A씨와 B씨 사례는 모두 이달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제보다. 코로나19로 건강과 돈벌이를 위협받는 일이 최근까지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리는 일은 규모가 작은 사업장과 비정규직 근로자일수록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27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과 비정규직 근로자 중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이후 소득 감소를 경험했다. 일자리를 아예 잃은 경험은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5배나 많았다. 직장갑질119와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6월 10~17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실직해도 실업급여 없고, 아파도 못 쉬고"

이번 조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지난해 1월 이후 실직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31.0%다. 정규직은 6.2%로 조사됐다. 5인 미만 직장인의 실직 경험(28.7%)은 300인 이상 사업장(11.1%)의 2.6배였다. 하지만 실직한 사람 중 실업급여를 받았다는 답변은 34.2%에 그쳤다. 고용형태별로 보면 정규직은 실업급여를 51.4%가 받은 반면, 비정규직은 29.0%에 불과했다.

실업급여를 못 받은 이유 중 상당수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서'(43.4%)였다. 비정규직 근로자 중 고용보험 미가입 비중은 48.4%, 5인 미만 사업장은 54.5%로 정규직(6.7%)과 큰 격차를 보였다.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도 비정규직(53.8%)이 정규직(17.0%)보다, 5인 미만(50.6%)이 300인 이상(27.6%)보다 훨씬 많았다. 고임금 노동자(18.9%)에 비해 저임금 노동자(50.7%)가, 남자(27.7%)보다 여자(37.0%)가 소득 감소 타격이 컸다.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여성의 소득 감소(58.7%)가 남성(47.8%)보다 높았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으로 "아프면 쉬기"를 강조하고 있는데 아플 때 자유롭게 연차나 병가를 쓸 수 있다는 답변은 78.6%였다. 21.4%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아파도 쉴 수 없는 직장인은 5인 미만 사업장이 30.9%로 가장 높았다.


고용유지지원금 한계… "취약계층 지원책 필요"

이 외에 취약계층일수록 비자발적인 휴직을 경험하고, 법정 휴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비정규직은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처리가 아니라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한 경험이 50%에 육박했다.

코로나19 유행 장기화로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4인 이하 사업장이나 파견용역업체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처럼 취약한 노동자들은 고용보험 미가입자이거나 사업주가 지원금 신청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사업주가 일정 부분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는 "최대 피해자인 비정규직, 5인 미만 사업장,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긴급 지원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빨리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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