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병기 신유빈 “‘탁구 신동’ 별명에 보답해야죠” [도쿄올림픽 우리가 간다]

입력
2021.06.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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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꼬마 현정화’ 어느덧 대표팀 ‘에이스’로
BTS에 얼굴 빨개지는 소녀지만 탁구엔 늘 진지
최근 매서운 성장에 “한계 가늠할 수 없는 선수”
“올림픽 꿈 이루다니 신기… 후회 없는 경기할게요”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탁구 신동이라고) 불러주니까 감사하고, 오히려 보답하려고 더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2020 도쿄올림픽이 열릴지 아무도 확답을 내리지 못했던 지난 4월, 인천 대한항공 탁구단 체육관에서 만났던 신유빈(17)은 생각보다 다부졌다. 다섯 살 ‘탁구 신동’ 신유빈의 모습이 워낙 강렬해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2009년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다섯 살 꼬마 현정화’로 소개된 신유빈은 ‘한국 탁구의 전설’ 현정화와 팽팽한 랠리를 펼치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처음부터 막 ‘탁구선수가 되겠다’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주변이 다 탁구였어요.” 신유빈은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처음의 순간에도 손엔 탁구채가 들려 있었다고 했다. 그의 부친은 탁구 선수 출신인 신현수다. 엄마를 따라 아빠가 운영하는 탁구장에서 놀다가, 때가 되면 탁구부였던 언니를 데리러 가는 게 어린 신유빈의 하루였다.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을 때도 외국 탁구대회를 시청했다. 자연스럽게 라켓을 잡고 놀았고 탁구대 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는 금메달 7개 따겠다고 하고 다녔대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가족들 하나씩 다 주려면 7개가 필요했거든요. 정말 아무것도 몰랐죠.” 신유빈이 웃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땐 그저 재롱인 줄 알았다. 하지만 탁구에 대한 신유빈의 열정은 갈수록 커졌다. 이미 동급생 가운데 적수가 없던 신유빈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성인부와 연습했다. 자연스럽게 지는 일도 많아졌다. 그 무렵 변화가 생겼다. “그 전까지는 막 ‘이기고 싶다’ 그런 생각보다는 재미있어서 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성인 언니들한테 계속 지니까 너무 이기고 싶은 거예요.” 실력의 벽을 마주하자 욕심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체육관에서 몸을 풀면 벌써 오후 4~5시다. 밤늦게까지 가득 채워 운동을 해도 실업팀 언니들의 연습량은 따라가지 못했다. 여기에 최연소 국가대표에 뽑히게 되자 결국 신유빈은 고등학교 진학 대신 실업팀 입단을 택했다. 모두와 다른 길을 가는 게 불안할 법도 했지만, 신유빈에겐 아직 넘어서지 못한 벽을 가만히 마주 보고 있는 게 더 불안한 일이었다. “체력적으로 안 되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했던 거 같아요. 생각해 보면 공부는 나중에 더 할 수 있는 거니까요.”

탁구에만 전념하게 돼서인지 신유빈의 실력은 몇 년 사이 폭발했다. 조대성과 콤비를 이뤄 출전한 2019 국제탁구연맹(ITTF) 투어 체코오픈에서 일본을 꺾고 정상에 올랐고, 2020년 1월 도쿄올림픽 세계 단체예선전 패자부활 결승전에서는 프랑스를 이기고 마지막 출전권을 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올 2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다른 언니들을 제치고 1위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3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스타 컨텐더 대회에서도 대표팀 맏언니 전지희(포스코에너지)와 함께 여자복식 우승을 차지했다.

대표팀은 남자 이상수(삼성생명) 정영식 장우진(이상 미래에셋증권), 여자 전지희(포스코에너지) 최효주(삼성생명) 신유빈(대한항공)이 5개 종목에 출전한다. 그중에서도 신유빈이 출전하는 여자 단식과 여자 단체전은 벌써부터 기대를 모은다. 전지희는 신유빈을 “어디까지 성장할지 가늠할 수 없는 선수”라고 했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 회장도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경쟁 상대) 일본도 신유빈의 데이터는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탁구 신동’ 신유빈은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탁구 에이스가 됐다. 막연하게 일기장에 썼던 올림픽이 이제 코앞이다. “올림픽에 진짜 나가게 되니 신기해요. 올림픽에 가는 이상 메달은 꼭 따고 싶어요. 메달은 제가 해온 과정을 인정받는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반드시 따야겠다는 마음으로 연습하고 시합 때는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거 다하고 싶어요.”

‘잘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덮칠 때는 방탄소년단(BTS)의 음악을 듣는다. 신유빈은 BTS의 팬이다. 요즘에는 ‘쩔어’라는 노래를 들으며 긴장을 푼다고 했다. 아직 BTS를 직접 본 적은 없다. 메달을 따면 혹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얼굴이 빨개지며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아니,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만나기보다는 그냥 서로 안 보고 공연 같은 데 가서 저 혼자 이렇게 (숨어서) 보고 싶어요.”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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