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가 되면, ‘사슴’도 된다

입력
2021.06.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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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킥보드는 새로 등장한 탈것인데, 공유서비스가 생기면서 현재 이용자가 꽤 많다고 한다. 여럿이 사용하는 공유 킥보드에는 ‘디어’란 이름표가 붙어 있다. 긴 손잡이를 잡고 몸을 실어 날렵하게 달려가는 학생들을 보면 꼭 사슴 같다. 그런데 그 탈것의 이름으로 ‘디어’는 되고 ‘사슴’은 안 된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기술력을 자랑하는 물건이 새로 나오면 으레 영어 이름이 붙는다. 대학 생활에서 쓰이는 스마트폰 앱은 대부분 그러하다. 학생증을 대신하는 앱은 ‘클리커’, 시간표 관리 앱은 ‘에브리타임’이다. 수업 자료를 출력하는 ‘애드투페이퍼’, 문서 확인용 앱인 ‘폴라리스 오피스’가 있고, 대외활동과 공모전 및 동아리 정보를 알려주는 ‘아이캠펑’, ‘캠퍼스픽’도 있다. 대학생이라면 충분히 알 만하지만, 어차피 한글로 적혀 있으니 말의 연원을 한 번 더 되새겨야 뜻이 잡힌다. 꼭 영어의 힘을 빌려야 했을까? 지금 대학생들은 정보통신 기술 면에서 한국이 우수하다는 것을 보고 자랐으니, ‘물 건너 온 기술’이란 환상은 오히려 쓸데없는 정보이다.

한때 지방자치단체의 영어 홍보가 유행했다. ‘Colorful Daegu, Dynamic Busan, Green Growth Incheon, It's Daejeon, Ulsan for you’ 등 외국 문자들이 전국 공공기관에 그림처럼 붙어 있었다. 문제점이 지적되자 ‘녹색의 땅 전남, 맑은 행복 양평, 아름다운 신비의 섬 울릉, 영일만 친구, 천년의 비상 전라북도, 희망 서울’과 같이 뜻으로 소통하려는 진정성 있는 표현들이 등장했다. 여전히 아파트나 자동차의 이름을 지을 때는 외국말을 우선시하지만, 먹을거리에 대한 작명은 달랐다. 지역별 농특산물 브랜드를 찾아보니, ‘거창한거창, 그대그리고영덕, 단고을단양, 보물섬남해, 섬진강재첩, 섬더덕울릉, 아산맑은, 완도자연그대로, 완전한완주, 장수만세, 제주마씸, 천년의빛영광, 청자빛강진황금’ 등 지역의 이미지를 높이는 건강한 이름들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지역의 특성을 잘 살린 이름은 소비자를 움직여 생산자에게 큰 이득을 준다. 바로 이름 짓기의 힘이다.

‘참새 방앗간’은 분식점에 기막히게 딱 맞는 이름이다. 방앗간에 드나드는 참새마냥 쪼르르 몰려갈 아이들이 그려진다. ‘작심 독서실’도 흥미로운 작명이다. 공부 앞에서 ‘작심삼일’로 무너져 본 이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이름은 사람을 움직이는 열쇠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