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할 일을 우리가 했는데" 규제받고 감독받고…속 끓는 네이버·카카오

입력
2021.06.25 04:30
17면
코로나19 이후 네이버, 카카오 공적 서비스 개발
사실상 정부 업무를 국민 포털·메신저가 수행한 셈
기존 인력들 업무시간 쪼개가며 단기간 내 출시
넷플릭스법, 52시간 초과 근무 등 규제받는 처지

공적 마스크 재고 확인 시스템, 전자출입명부(QR 체크인), 잔여 백신 당일예약 서비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불거진 국가 비상사태에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개발해 운영한 서비스들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안정적인 개인인증에서부터 위치사업과 데이터 처리, 그래픽 등은 양사 개발자들의 밤샘 작업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처벌과 규제뿐이었다. 포털업계 관계자는 "부처에서는 '이런 이런 게 됐으면 좋겠다'고 간단히 말하지만, 상상력으로 기획부터 완성, 운영까지 하는 건 사업자의 몫"이라며 "직원들이 공적 사명감을 갖고 업무 시간을 쪼개가면서 일을 했는데 규제만 받고 있으니까 억울하면서도 답답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정부 한마디에 몇주 만에 전 국민 쓰는 서비스 완성까지 해야"

포털업계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와 관련, 정부에서 요청한 급한 업무를 대신해 줬지만 오히려 통제만 받게 된 상황 때문이다.

24일 포털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최근 고용노동부로부터 주 52시간 초과 근무 등의 이유로 시정조치를 받았다. 네이버 역시 주 52시간 초과 관련, 현재 중부지방고용노동청과 성남지청 근로감독관들로부터 특별근로감독을 받고 있다.

양사는 모두 "법에 정해진 대로 근무 환경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정부로부터 지시받은 각종 공적 프로젝트도 초과 근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 부처에 수많은 과제를 넘겨받고 있다. 국내 최대 포털과 메신저를 운영 중인 양사 덕분에 정부도 국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편리하게 제공했다. 양사도 사회에 기여한다는 인식에서 기꺼이 해당 업무를 수행했다.

포털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자사 프로젝트의 경우 준비 기간이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걸리는 반면 정부 프로젝트는 길면 한 달, 짧으면 수주 만에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인 만큼 대충 만들 수도 없어 수많은 직원들이 과부하 걸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사 서비스는 적지 않은 사회적 편익을 제공했다.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대란 상황에서 네이버와 카카오의 마스크 확인 시스템이 빛을 발했고, 잔여 백신 당일예약 서비스로 인해 백신 보급 속도도 빨라졌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잔여 백신 신속예약이 시작된 지난달 27일 이후 누적 잔여 백신 접종자는 129만5,033명에 달했다.


"당위성 갖고 무리하면서 만든 것만 알아줬으면"

하지만 개발 비용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에 대한 책임도 사업자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잔여 백신 예약 서비스 첫날 카카오톡에 사람들이 몰려 2시간가량 접속이 안 됐던 상황이 발생했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를 두고 '넷플릭스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적용하고 카카오에 원인, 오류 조치 내용,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조사했다. 네이버 역시 최근 일부 이용자들이 자동반복(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잔여 백신을 예약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업계에선 공치사는 정부가 하고 재주는 사업자가 부린다는 인식을 하고 있지만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추후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입도 뻥끗 못 하는 상황이다. 포털업계 관계자는 "누군가는 '해당 서비스로 인해 이용자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 모두 그런 효과가 필요하지 않는 회사"라며 "규제기관들이 당위성과 선의에서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