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이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을 상부에 허위 보고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서욱 국방부 장관이 이를 지적한 감사 결과를 보고받고도 수사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허위 보고를 주도한 의혹을 받는 군사경찰단장 이모 대령이 입건이나 보직해임 없이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내부 제보도 나왔다.
군인권센터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복수의 군 관계자에게 제보를 받았다면서 "국방부 감사관실이 이 대령의 사건 은폐 정황에 대한 감사 결과를 지난 12일 장관에게 보고했지만, 서 장관은 열흘 가까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대령은 A 중사의 극단적 선택 직후 작성된 사건보고서에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다. 센터에 따르면 해당 감사보고서는 4쪽 분량으로 이 대령의 부당행위 정황과 함께 '당사자 간 진술이 엇갈려 수사 필요'라는 의견이 적시됐지만, 서 장관은 수사 전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틀 전 공군본부의 사건 은폐 의혹을 폭로했던 센터는 "당일 국방부 감사관실은 언론에 '당사자 간 진술이 엇갈려 감사가 계속 진행 중인 사안'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장관에게 감사 결과를 보고한 만큼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도 했다.
센터는 서 장관이 감사 보고를 받기 전에도 공군본부의 허위 보고를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의 사건보고서는 당초 A 중사가 성추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적시해 공군참모총장에게 상신됐지만, 국방부 보고 과정에선 이 대령 지시로 수정된 보고서가 올라갔다고 한다. 서 장관은 이 사건에 대해 공군참모총장의 구두 보고와 공군본부의 서면 보고를 함께 받은 만큼 두 보고 내용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파악했을 거라는 게 센터 측 주장이다.
센터는 또 "국방부 대변인이 언론에 이 대령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이 대령은 입건조차 되지 않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앞서 서 장관도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번 의혹과 관련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수사를 통해 제기되는 의혹을 낱낱이 밝히겠다"고 답해 이 대령 등이 수사 대상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센터는 이날 허위 사건보고 의혹과 관련해 보다 상세한 경위를 설명했다. A 중사가 숨진 채 발견된 다음 날인 지난달 23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 중앙수사대 사건과장이 A 중사가 성추행 피해자라는 내용을 담아 사건보고서를 작성했고, 중앙수사대장은 이대로 공군참모총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튿날 이 대령은 중앙수사대장에게 네 차례 전화를 걸어 A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센터는 서 장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센터 관계자는 "서 장관은 의혹 해소를 위해 국방부 감사를 즉시 수사로 전환해 군사경찰단장을 입건하고, 필요에 따라 강제수사도 신속하게 진행했어야 했다"며 "그 결과에 따라 공군참모총장 등 윗선에 대한 수사 필요 여부도 판단해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센터는 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기 위해 특별검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태훈 소장은 "서 장관은 대통령의 엄정수사 지시를 이행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방부와 국방부검찰단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청문회를 열어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A 중사 사망 사건에 대한 특검법 제정을 목표로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를 통해 30일간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청원을 제출하면 국회가 법률안에 준해 처리하는 제도다.
국방부는 이날 국방부검찰단에 해당 사안을 수사의뢰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해명에 따르면 감사관실은 이달 6일부터 진행한 현장감사에서 문제의 허위 보고 사실을 발견했지만 관련자 진술이 계속 엇갈려 보강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진실 규명이 여의치 않아 17일 수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 관련 안건을 상정, 전날 수사의뢰를 권고받았다. 국방부는 12일 서 장관에게 현장 감사 결과를 보고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보고서에 '수사 필요'가 아니라 '추가 확인 필요' 의견을 붙였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