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광수 감독 "이정은이 '출연료는 무슨'이라며 통 크게 출연해줘"

입력
2021.06.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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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출작 '메이드 인 루프탑' 개봉

독립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23일 개봉)은 밝고 화사하다. 두 남남 커플의 사연이 얼개다. 남자끼리의 사랑이 눈에 띈다 할 뿐,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다. 사랑 이야기에다 90년대생의 고민과 생활 방식을 포갰다. 김조광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김조 감독을 만났다..

‘메이드 인 루프탑’은 김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2012)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게이들의 사랑과 이별을 그려 화제를 모았다. 장편 데뷔작에 이어 연달아 퀴어영화를 만든 셈이다. 김조 감독은 당초 상업영화 연출을 모색했다. 영조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팩션 사극과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사극을 차기작으로 준비했다. 둘 다 제작 윤곽만 잡히고 투자 유치가 원활치 않았다. 뱀파이어 소재 미스터리 사극은 김조 감독이 제작한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2018)에 반영됐다.

김조 감독이 ‘메이드 인 루프탑’을 연출한 건 게이 후배들의 성화 때문이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중년 정서가 강했기에 젊은 세대를 위한 퀴어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김조 감독은 “지난해 4, 5월쯤 어떤 분이 독립영화 연출하면 투자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해 연출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연출을 안 해 감독이란 호칭이 쑥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촬영 현장이 그리웠다”고도 했다.

‘메이드 인 루프탑’의 주인공은 90년대생 하늘(이홍내)과 봉식(정휘)이다. 하늘은 동거하던 남자친구와 싸우고 집을 나와 봉식의 옥탑방에 얹혀 산다. 에너지 넘치는 20대지만 취업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유튜버인 봉식은 하늘과 정반대 성격이다. 옥탑방에 살지만 호화롭게 살고 싶다. 옥탑방을 루프톱이라 칭하고, 취미는 명품 수집이다. 어차피 취직해 돈 모아 집 사기는 글렀으니 인생을 즐기자는 생각이다. 둘은 사랑 때문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영화는 두 사람이 사랑하고 고뇌하며 뜨거운 20대를 관통하는 모습을 경쾌하게 그린다.

20대를 다룬 이야기지만 김조 감독은 50대다. 김조 감독은 “영화를 구상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외피는 청춘 영화인데, 알고 보니 꼰대 영화라는 소리를 들을까”라는 우려가 앞섰다. 김조 감독은 “막 가르치려 들고, 어줍잖게 위로하려 드는 게 싫기도 했다”고 말했다. 펭수 열풍을 일으킨 ‘자이언트펭 TV’의 염문경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의뢰했다. “90년대생에 가까운 89년생이고 펭수 캐릭터를 만든 감성이 20대 인물을 잘 묘사하리라 생각했어요.”

김조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90년대생을 좀 더 이해하게 됐다. 그는 “90년대생은 정말 다른 세대”라며 “게이만 놓고 봐도 40, 50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저희는 20, 30대까지도 자기 정체성 때문에 인생의 많은 시간을 어둡게 보냈는데 90년대생은 게이로서의 고민을 10대 때 다 끝내더라고요.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으니 환경 탓은 해도 자기 탓하지 않으며 즐겁게 살겠다’는 생각이 강해요.”

영화에는 배우 이정은이 출연해 감초 역할을 한다. 봉식의 이웃인 순자를 연기했다. 하늘을 보고선 봉식에게 “남자친구야?”라고 묻는 중년 여인이다. 김조 감독과 이정은은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다. 김조 감독은 “졸업작품으로 연극을 같이 했는데 정은이가 연출을, 나는 연기를 했다”며 “정은이가 내 발연기를 참고 잘 지도해줘 A플러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은이가 ‘기생충’ 이후라 (몸값이 뛰고 바빠져) 과연 할까라고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보냈다”고도 밝혔다. “독립영화라 출연료가 적다고 했더니 되레 ‘무슨 출연료야, 오빠’라며 통 크게 출연해줬어요.”

김조 감독은 2013년 파트너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와 공개 결혼식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첫 퀴어영화를 만든 지 9년, 공개 결혼식을 한 지 8년, 세상은 변했을까. 김조 감독은 “확실히 바뀌었다”며 “시기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을 뿐 한국에서도 동성결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차별금지법이 국회 법사위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등 법과 제도에 있어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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