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에너지, 기(氣)를 캔버스에 포착하려고 하죠.”
한국 현대미술 원로 작가인 이강소(78) 화백은 1999년 그가 제작한 ‘강에서’라는 작품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언뜻 보기엔 두꺼운 붓을 그냥 휘갈겨 놓은 듯한 그림은, 작가가 중국 양쯔강을 여행하며 그 풍경에서 받은 감동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화백은 “최근에 다시 그리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며 “그 때의 감동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이강소 화백의 개인전 ‘몽유(夢遊)’가 진행 중이다. 전시에서는 ‘강에서’를 비롯해 그가 1990년대 말부터 올해까지 완성한 회화 30여점을 볼 수 있다. 전시 제목이 몽유인 것은 그가 보이지 않는 기에 관심이 큰 것과 연관이 깊다. “눈에 보이면 ‘무언가가 있다’라고 관습적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각자 보는 게 다 다르잖아요. 가끔 현실이 가상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거기에서 탈출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요.”
서예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많지만, 정작 그는 서예를 배운 적이 없다. 이 화백은 “서예를 했다면 이런 무자비한 선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낯설 수 있는 컬러 작품도 선보였다. 붉은색, 푸른색을 과감히 사용한 청명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회색이나 흑백의 기존 회화와는 극명히 다르다. 이 화백은 “공작새의 깃에서 빛나는 색채를 보며 색을 억제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색이 저를 유혹해서, 지금 그 색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강소 화백은 1965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신체제라는 미술 연구 모임을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현대미술 운동에 뛰어 들었다. 1970년대 신체제를 비롯해 A.G.그룹, 서울 현대미술제 등의 미술 운동을 주도하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 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