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는 어쩌다 '호주 vs 중국' 싸움을 부추겼나

입력
2021.06.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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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 세계유산에 호주 '산호초' 지정 임박
관광수입 연 5조4,000억 날아갈 판, 호주 반발
호주 “중국의 음모” 때리자 中 “중상모략” 반박
중국 여론 45% “美 때문에 호주와 관계 악화”

호주 '대보초(Great Barrier Reef)'는 한반도 면적과 맞먹는 세계 최대 산호초다. 1981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상태가 악화돼 유네스코(UNESCO)는 '멸종 위기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다시 등재할 참이다.

그런데 불똥이 중국으로 튀었다. 호주가 '중국 음모론'을 제기하자 중국은 "피해 망상"이라고 맞섰다. 가뜩이나 앙숙인 양국 관계에 환경 문제까지 겹쳐 출구 없는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연간 관광수입 5조4,000억 원 날아갈 판, 호주 반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1일(현지시간) 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해수 온도 상승, 허리케인의 습격, 불가사리 번식 등으로 1995년 이래 대보초의 산호초 개체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멸종 위기 세계유산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권고했다.

호주는 강력히 반발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수산 레이 환경장관은 "호주는 대보초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면서 "호주보다 보호 조치가 미흡한 다른 국가들에도 나쁜 신호"라고 일갈했다. 호주는 대보초 관광으로 매년 48억 달러(약 5조4,547억 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관련 일자리는 수만 명으로 추산된다. '멸종 위기'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관광 수입과 고용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호주 "중국의 음모" 때리자 中 "중상모략" 반박


호주는 중국을 물고 늘어졌다. 톈쉐쥔(田學軍) 중국 교육부 부부장(차관)이 세계유산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는 점을 트집 잡았다. 디오스트레일리안 등 호주 매체들은 "보고서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며 "중국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의 책임을 물어 제소하겠다"는 호주 관료의 발언을 전했다.

대보초의 운명은 내달 16~31일 열리는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확정된다. 그런데 개최지가 중국 푸젠성 푸저우다. 호주가 촉각을 더 곤두세우는 이유다. 환구시보는 23일 "중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건 호주의 피해 망상"이라며 "중국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호주의 중상모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라고 반박했다. 신경보는 "국제기구와 환경 전문가들이 줄곧 경고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호주 정부는 충분한 환경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인 45% "美 때문에 호주와 관계 악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까지 호주와 중국은 서로 우호적이었다. 중국 유학생은 호주 전체의 28%(76만 명), 중국 관광객은 호주 전체의 15%(지출액 기준으로는 27%)를 차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호주가 '중국 책임론'의 선봉에 서자 중국은 호주제품 수입을 중단하고 유학생과 관광객을 끊었다. 심지어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이라고 호주를 노골적으로 비아냥댔다. 이에 호주는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가치동맹과 군사협력체 쿼드(Quad)에 적극 참여하며 대중 봉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중국인의 반감도 커지고 있다. 환구시보와 베이징외국어대가 이달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 '호주에 대한 호감도'는 지난해 65.3%에서 올해 55.6%로 눈에 띄게 낮아졌다. 특히 '중국과 호주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로 45.6%가 미국을 꼽았다. 이어 이념 차이(35.4%), 호주 국내정치(15.9%) 순이었다. '호주가 중국에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응답은 49.6%로, 지난해(43.2%) 보다 늘었다. 종합하면, 중국인들은 "호주가 중국을 외면할 수 없는데도 미국 때문에 강경 입장을 고수한다"고 여기는 셈이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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