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의 기상천외한 생존법

입력
2021.06.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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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독 우산이 많이 필요한 해입니다. 지난 5월만 하더라도 장마처럼 끈질기게 비를 뿌렸죠. 우산은 비를 막기 위함이고 그 밑의 우리는 젖지 않습니다. 생소할 수도 있겠으나 생태계에도 우산종(umbrella species)이 있습니다. 뭐 까치나 너구리와 같은 특정 종을 일컫는 것은 아니고 인간이 분류한 기능적 개념입니다. 우산종은 어느 지역의 생태 피라미드 구조나 먹이사슬의 최상층 생물종 혹은 특정 목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종으로 흔히 봅니다. 이 종을 보호함으로써 해당 생태계 하위 동식물이나 생물 다양성 또는 그 생태계를 우산처럼 보호하는 데서 비롯한 종 개념이죠.



한편 생물종 스스로가 그 우산 밑으로 들어가 보호를 받는 형국도 있습니다. 생각해보자면 주택이나 그 주변에 둥지를 트는 제비를 들 수 있겠죠. 인간을 제외하고 제비에게 접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이러한 생물종 사이의 시공간적 이용에 관한 연구가 보고되었습니다. 미국 서부 네바다주의 1만5,000㎢ 정도 생태계 내 육식동물들의 상호 연관성을 살핀 연구입니다. 북미흑곰은 이 생태계 내에서 극상의 위치를 갖습니다. 거기에는 코요테, 밥캣과 회색여우라는 중소형 식육류도 같이 살아가고 있지요. 이 중 회색여우는 3.5~7㎏ 수준의 작은 동물이고 이보다 큰 코요테나 밥캣은 잘 알려진 회색여우 포식동물이죠. 따라서 회색여우는 빈 틈새 공간을 찾아 살아가야 합니다. 도시화 구역에서는 밥캣은 서식지를 떠나지만 회색여우는 보다 유연하게 변화된 환경을 이용하지요. 숲 안에서도 코요테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나무 타기 능력도 발달했죠. 어쨌건 회색여우에게는 코요테와 밥캣이 무서운 존재임에는 변함없습니다. 이때 흑곰의 존재가 두드러집니다. 흑곰 경쟁자는 인간과 흑곰 스스로밖에 없습니다. 흑곰의 핵심구역 내에서는 먹이 경쟁이든 포식이건 코요테와 밥캣은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지요. 다른 공간도 있는데 굳이 목숨 걸어가며 흑곰과 충돌할 리는 만무합니다. 따라서 이 공간에서 회색여우는 코요테와 밥캣을 피할 수 있습니다. 흑곰이 회색여우에게 우산을 제공한 셈이지요. 다만 문제는 흑곰이 겨울잠을 잔다는 것이고 코요테는 이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흑곰이 잠을 자는 시기에 코요테는 이 공간을 3배 이상 더 방문하였고 회색여우는 흑곰이라는 방패를 떠나 한시적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반달가슴곰, 여우, 산양, 황새 등... 하지만 여전히 이 복원을 가로막는 여러 원인들이 있습니다. 이 원인을 하나씩 제거하다보면 어느새 생물다양성이 늘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밀렵 단속을 통해 밀렵도구를 없애고, 농약 중독을 막기 위한 대체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며, 로드킬과 유리창 충돌을 막아야 합니다. 고압선에 감전되는 사고를 막으면 다른 종도 그 피해를 덜 입습니다. 해당종에 맞는 맞춤형 보호장치가 꼭 그 종만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죠. 이렇게 생태계 상호간의 균형이 조금씩 잡혀가는 것이죠. 여기에 멸종위기종 보전이라는 궁극적 그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