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편의점 수제맥주 경쟁이 불붙으면서 이른바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기획하는 편의점 주류 상품기획자(MD)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CU의 곰표 밀맥주, 세븐일레븐의 쥬시후레쉬 등 넘치는 이색맥주 사이에서 고객의 마음을 계속 사로잡을 '한방'이 필요해서다.
이 가운데 GS25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외부 활동이 늘어난 현상에 주목했다. 지난 10일 출시한 '노르디스크 맥주'는 아웃도어 브랜드 노르디스크와 손잡고 캠핑에서 마시기 좋은 라거타입 수제맥주로 기획했다. 출시 이틀 만에 60만 개가 모두 팔렸는데, 5개월에 100만 개를 판 곰표 밀맥주보다 빠른 속도다. 물량 부족에 잠시 판매를 중단했던 GS25는 24일부터 200만~300만 개 수준으로 주문량을 늘려 판매를 재개한다.
노르디스크 맥주를 기획한 한구종(41) GS리테일 주류 MD는 지난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소비자는 처음에 단순 호기심으로 이색맥주를 구입하는데, '예쁜 쓰레기' 같은 반응이 나오면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반짝 매출을 넘어 지속적인 구매로 연결될지가 성공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노르디스크 맥주는 가족과 캠핑을 간 한 MD가 맥주를 마시다가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여름날 야외에서 마시기에 최적화된 맥주의 맛을 찾고 싶다는 욕구였다. 특유의 과일·꽃향으로 겨울에 잘 팔리는 에일보다 청량감 있는 라거를 캠핑 콘셉트에 접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6~8월 GS25 맥주 매출 데이터에서 라거 타입 맥주 비율이 75%로 높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노르디스크와 협업을 확정한 후에는 오비맥주 자회사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KBC)와 최상의 맛을 찾는 테스트 과정이 이어졌다. 지난해 12월부터 몰트(맥아)와 홉을 여러 방식으로 배분하고 조합하면서 12가지 샘플 테스트를 진행했다.
한 MD는 "청량감 있고 가벼워 바비큐 같은 캠핑 음식과 곁들여 마시기 좋은 맛을 찾아 후보군을 줄여나갔다"며 "무엇보다 맥아를 100% 사용해 풍미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컬래버레이션 상품은 재밌는 콘셉트로 고객의 흥미를 끌어내면서도 이와 어울리는 맛을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한 MD의 지론이다. 지속적인 구매를 이끌어내려면 기본에 충실한 맛을 표현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국 소규모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재야의 고수'를 발굴하는 것도 MD의 역할이다. "특정 지역 펍에서만 파는 지역 맥주라든가, 종종 열리는 수제맥주 박람회에서 상품화 가치가 있는 맥주를 찾는다"고 한다. 한 MD는 "수제맥주도 일종의 음식"이라며 "같은 제육볶음이라도 식당마다 맛이 다르듯이, 똑같은 맥주라도 어느 양조장에서 만들었는지에 따라 다른 맛이 난다"고 강조했다.
당장 편의점 수제맥주는 유행에 민감한 2030세대 위주로 소비되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구매 계층을 확대하는 게 한 MD의 목표다. 한 MD는 "편의점 맥주 종류가 늘면서 품질을 따지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이런 니즈를 빠르게 읽고 콘셉트를 확대하는 노력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