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홀로 하기’가 기본인 일본, ‘더불어 하기’가 기본인 한국
2000년대 초반, 도쿄의 한 라멘 가게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칸막이로 단단하게 구분된 극장식으로 배치된 1인용 좌석의 구조가 여느 음식점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흡사 독서실이나 PC방에 온 듯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당시에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진풍경이었다. 지금은 이른바 ‘혼밥족’도 늘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좌석마다 칸막이가 설치된 음식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혼자 음식점을 찾는 손님은 소수파였고, 불청객인 양 푸대접을 감수해야 했다. 나 역시 한국에서는 ‘혼밥족’으로 자주 구박받던 터, 마음 편히 후루룩 라멘을 들이켤 수 있는 그 공간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혼밥’, ‘혼술’, 나홀로 여행 등이 은근한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사 혼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역시 한국 사회는 더불어 하기를 선호하지 않나 싶다. 혼자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진은 쉴 새 없이 친구와 연락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더불어 여행을 떠난다. 결국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의미가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한국의 나홀로주의는 피곤하고 번잡한 사회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대안적 욕망이 스며 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의 나홀로주의는 혼자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좋다는 직접적 욕망의 반영이다. 외식도 혼자, 쇼핑도 혼자, 여행도 혼자, 영화나 공연, 게임을 즐기는 것도 혼자가 가장 즐겁고 보람차다. 모처럼의 휴일에는 기꺼이 혼자 있기를 택하고, 혼자일 때에는 굳이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다. 고도로 다양화된 소비 사회이다 보니 혼자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불편도 크지 않다. 대부분의 식당이 혼자 온 손님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트나 편의점에는 1인용 식재료와 인스턴트 식품이 풍부하게 구비되어 있다. 1인 노래방이 처음 시작된 곳도, 1인 야키니쿠 전문점이 인기를 끄는 곳도 일본이다.
직장이나 단체에서는 회식이나 회합도 빈번하고 ‘마츠리’(祭り, 축제를 뜻하는 일본어. 일본에는 주민들이 기획하는 작은 마을 축제가 적지 않다) 등 여럿이 함께하는 문화도 자리잡고 있다. 사실 많은 일본인이 타인과 더불어 하는 자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긴다. 그렇지만 역시 한국 사회와는 맥락이 좀 다르다.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하는 적적함과 고독함을 떨쳐내고 싶다는 심리가 있다. 한국 사회의 나홀로주의가 더불어 살기에 대한 반동이라면, 일본 사회의 함께하는 문화는 홀로 살기에 대한 반동이라고 하겠다.
◇코로나 시대, ‘나홀로주의’의 명암
일본은 글로벌 팬데믹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나라다. 코로나19 인구당 확진자가 한국의 두 배에 달하다 보니 우리에게는 심각한 듯 보이는 착시 효과가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지표와 비교하면 일본은 감염률도 치명률도 낮은 편이다. 한국 정부가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적극적으로 방역을 실천한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시민들이 체감할 만한 방역 대책이 제대로 전개된 적이 없어서 질책의 목소리가 높다. 즉 일본에서는 소극적인 방역 대책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았다. 그 이유를 둘러싼 여러 가지 ‘썰’ 중에는 일본의 개인주의적 문화에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외식도 쇼핑도 나홀로족이 많을 뿐 아니라, 웬만해서는 물건과 장소를 공유하지 않는 관행도 있다. 이런 사회적 조건 때문에 바이러스가 쉽게 전파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제법 설득력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나홀로주의가 늘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함께 고민해야 마땅한 집단의 문제를 개인의 이슈로 치부한다든가,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사안에도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등 고립 문제가 빈발하고 있다.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 숨어들어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의 일본어로 은둔형 외톨이를 뜻한다) 등 사회 생활을 거부하는 개인의 비율도 상당하다. 일본 정부는 올해 초 내각 관방청 산하에 고령자 보호, 고독사 방지 등을 정책 목표로 내건 ‘고독・고립 대책 담당실’을 신설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재택 근무와 외출 자제가 장기화되면서 개인의 사회적 고립과 고독감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나홀로주의 노선을 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더불어 사는 삶을 거부하는 정도에 이르는 것은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결코 건강하지 않다.
나홀로주의의 프로토콜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일본 사회 내부에서는 실감하기 어렵지만, 일본 사회 외부에서 보자면 ‘더불어 하기’의 기술이 빈곤하다는 난점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이른바 ‘농담 따먹기’라고 하는 화법이 있다. 실없는 농담이나 중요하지 않은 화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는 대화법인데, 처음 만난 상대방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사교술로 그만한 것이 없다.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 준다거나 친구들이 번갈아 밥값을 ‘쏘는’ 관행도, 부작용이 없지는 않으나 한국 사회의 인간 관계를 밀접하게 만들고 지속시키는 ‘더불어 하기’ 기술의 일종이다. 대조적으로 이런 관행이 좀처럼 성립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낯선 이와 인간적으로 친해질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리고, 자주 얼굴을 보아도 어색한 관계가 지속되곤 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 G7(주요 7개국) 회의에 참석한 스가 총리의 부족한 사회성도 구설수에 올랐다. 카메라에 잡힌 총리의 모습은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 각국 정상들의 담소에 좀처럼 끼지 못하고, 혼자 어정쩡하게 거리를 두고 이동하는 총리의 비사교적인 모습이 한동안 소셜미디어에서 냉소적으로 회자되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국제 회의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데에 느끼는 어려움은 잘 알고 있다. 총리의 난감한 표정에 동병상련도 느낀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언어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나홀로주의가 뿌리내린 일본에서, 낯선 사람의 마음을 열 줄 아는 사회성을 몸에 익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에는 어떻게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공존할 수 있을까?
일상 속에 나홀로 관행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 개인주의가 굳건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섣부르다. 취미나 오락 등의 영역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현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적인 영역에서는 정반대로 국가나 집단의 목표를 개인의 가치관보다 우선시하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올림픽 등 국가 행사를 위해서라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해야 마땅하다는 일본인이 대다수인데, 일반적인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고방식이다. 일본 사회에는 어떻게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라는 서로 상반되는 신조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정치철학적으로 개인주의는 국가나 사회 등 집단적 가치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공적인 사고방식이다.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의 근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사상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있어 개인주의에는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맥락이 있다. 이른바 행위의 기본 원리라는 측면이다.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에 의거하는 소비 행위야말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정상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기본 요소다.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는 소비 행위와 정치 행위라는 상이한 차원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개인주의는 소비 행위라는 측면에서 개인의 자아 실현에 훌륭하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 행위라는 측면에서는 존재감이 미약한, 반쪽짜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개인주의는 중요한 화두다. 특히 젊은 세대에 있어서 ‘개인’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아닐까 싶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디지털 공간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삶의 전략으로서 개인주의의 존재감은 앞으로도 커질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