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미루지 마세요" 30대 건축가 부부의 '집밥 같은 집'

입력
2021.06.23 04:30
22면

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매일매일을 위한 집밥 같은 집. 건축가 부부, 표주엽(39) 이새롬(31)씨는 경기 양평 문호리에 위치한 '412하우스(대지면적 335㎡, 연면적 138.67㎡)'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 집은 부부가 건축가로서 설계한 첫 집이자 지금까지 아파트에서만 살던 부부가 경험하는 첫 단독주택이다. 젊은 건축가 부부가 살 집을 직접 지었다는 말에 실험 정신으로 가득한 집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부부는 불필요한 공간을 줄이고 줄여, 집의 기능에 충실한 집, 철저하게 실용적인 집을 완성했다.



단독주택은 노년의 전유물? 행복을 미루지 마세요

부부도 이 집에서 살기 전에는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서울 20평대 전셋집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아 길렀다. 둘 다 건축을 전공했으니 언젠가는 집을 짓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다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TV를 보고 있는데 안톤 슐츠(독일 언론인)가 나와서 '한국인들은 행복을 유보하면서 사는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안 되겠다, 우리 부동산 가자' 한 거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이새롬)"

건축가 부부에게도 내 집 짓기는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예산의 제약이 있었고,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의 땅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수십 차례 드나든 끝에 지금의 땅을 찾아내고서야 집 짓기에 착수할 수 있었다. 서울 20평대 아파트 전셋집 비용 안에서 집 짓기가 가능했고, 사무실이 있는 강남으로 1시간 내에 출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았다. 표씨는 "서울 아파트에 거주하던 비용으로도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지를 정한 다음부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부부가 워낙 건축 철학과 취향이 비슷해서다. 부부는 집을 지을 때 꼭 만들고 싶은 공간이 아닌, 만들지 말아야 할 공간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표씨는 "흔히 좋은 집을 가리킬 때 '외국 같다' '호텔 같다' 이런 수식어를 쓰는데, 그런 '동경'에서 발단이 된 공간들은 배제했다"고 말했다. 홈짐, 오디오룸, 다이닝룸과 같은 전용룸이나 단독주택에 흔한 바비큐장 하나 없는 이유다. 일시적인 기능을 갖는 공간은 다 뺐다. "저희는 집이 기본에 충실할 때 가장 빛이 난다고 생각해요. 외국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매일 외식을 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생활을 위한 집은 잘 지은 백반 한 공기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표주엽)"

기본에 충실한 집을 만들겠다는 철학은 창문에서 두드러진다. 이 집은 다른 단독주택에 비해 창 크기가 작다. 창문도 꼭 필요한 곳에만 만들었다. 창 밖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게 자연 속 단독주택의 매력이지만, 여름과 겨울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창이 크고 많을수록 냉방 효과와 단열 효과가 떨어지는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해서다. 아무리 비싼 창호도 단열재가 충전된 벽보다는 효과가 떨어진다. 집이 정남향이라 창이 작아도 조도가 좋다는 점도 고려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벽면이 아닌 천창을 낸 것도 미적인 효과보다는 창의 기능을 감안한 것이다. 통상 같은 크기의 창이라 해도 벽면에 내는 창보다 천장에 만든 창의 조도 효과가 4배 높다. 또 이층집은 더운 공기가 위쪽으로 올라가 1층보다 2층이 덥기 마련인데,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계단에 창을 내서 층별 온도차를 줄이도록 했다.

표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은 무조건 작고 무조건 없는 집이 아니다"라며 "과녁의 정중앙처럼 9점, 8점 같은 여분을 허용하지 않는, 정답만 뭉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가족의 생활에 맞춤 설계된 집

집의 중심은 주방과 거실이 나란히 배치돼 있는 1층이다. 천장의 높이만 단차를 뒀을 뿐 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아직 어린 아이(4)를 위한 설계로, 아파트에 살 때 주방과 거실이 분리돼 있어 불편함을 느꼈던 데서 비롯됐다. 이씨는 "주방과 거실이 오픈 플랜으로 경계가 없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에서는 제가 (요리할 때) 주방에 있으면 아이도 엄마가 '주방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계속 찾았지만, 이제는 제가 주방에 있어도 거실에 있는 자신이랑 같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생활이 훨씬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가족들의 생활 방식을 고려해 설계했기 때문에 동선은 군더더기가 없다. 낮에는 주로 부엌, 거실, 화장실이 있는 1층에서 생활한다. 방 3개, 화장실이 있는 2층에서는 잠만 잔다.



부부는 값비싼 건축 재료가 아닌 작은 차이만으로 개성을 담은 집을 완성했다. 대표적인 게 코너에 기역자로 배치된 거실 창과 그 옆의 벽이다. 부부는 보통 거실 벽 중앙에 크게 내는 창을 코너로 밀고 이렇게 해서 남은 벽을 미술 작품에 내줬다. 부부가 평소 좋아하는 구자현 작가의 석판화를 걸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계산된 공간이다.

마당처럼 단독주택에서 부부가 처음 경험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부부가 관리 가능할 수 있도록,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구성하는 게 원칙이었다. 우선 마당을 지날 때 신발에 흙이 묻지 않고 집을 오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콘크리트로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마당에 전부 잔디를 까는 대신 3등분으로 나눠 각각 잔디, 돌, 나무 덱(deck)을 배치했다. 서로 다른 물성을 나란히 배치해 공간의 경쾌함을 살린 것은 덤이다. 이씨는 "조그만 공간이라도 관리가 잘되면 충분히 아름답다"며 "저희가 즐겁게 힘들이지 않고 관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작은 마당이지만 주택살이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충분하다. 마당에 아이를 위한 수영장을 만들지 않아도,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굽지 않아도,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이다. 아침의 시작부터 다르다. 표씨는 "아파트에 살 때는 출근할 때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버튼부터 눌렀지만, 이제는 문을 열면 폐 속으로 신선한 공기가 밀려들고 새소리가 들린다"며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씨도 "아이와 내가 마당에서 맨발로 걸어다닐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고 했다.

집을 짓고 살아본 지 1년, 부부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씨는 "전에는 낮과 밤의 주기로 하루하루를 살았다면, 이제는 계절의 주기를 느끼며 살다 보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고 했다. "겨울이 지나 봄으로 넘어갈 때, 앙상한 가지에서 엄청난 자연의 기운, 땅의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부부가 집을 짓지 않았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행복이다.


송옥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