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눈치' 보느라…대만과의 무역협상 딜레마 빠진 EU

입력
2021.06.21 20:00
바이든 '대만 무역협상 개시' 소식에
중국 우선순위 뒀던 EU 고심 깊어져
"대만과 협상 필요" 내부 여론도 많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만과의 무역협상을 개시한다는 소식에 유럽연합(EU)이 딜레마에 빠졌다. 동맹인 미국의 적극적 중국 견제 행보에 맞춰, EU도 대만과의 무역협상을 시작하자니 중국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탓이다. 지난해 체결된 중국과의 무역협정이 비준 절차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중국 인권문제 등으로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으나, 7년간의 협상 결과물을 이대로 잃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그럼에도 대만과의 협상을 주장하는 내부 여론 역시 적지 않아 진통이 예상된다.

20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유럽에 따르면 유럽의회 국제무역위원회(INTA)는 최근 회원국들에 대만과의 투자·무역 회담을 촉구하는 내용의 '새로운 EU-중국 전략'을 통과시켰다. 이 안건엔 위원회 재적인원 41명 중 부재자 3명을 제외한 38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압도적 지지였다. 민주적 가치와 친환경 목표를 공유하는 대만과의 관계 강화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양쪽 모두에 충분하다는 이유다.

하지만 대만과의 무역 협상은 개시 자체가 대중(對中) 선전포고다.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의 국제무대 활동을 모두 막아섰다. EU도 이런 점을 고려해 앞선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협상 요청을 외면해 왔다.

최대 우려는 중국과의 무역협정 무산 가능성이다. EU와 중국은 지난해 포괄적 투자협정(CAI)을 체결한 상태로, 상당한 경제적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올해 3월 EU가 '신장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 제재를 결정, 이미 양측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대만과의 무역 협상까지 개시하면 이들의 사이는 더 악화될 게 뻔하다.

그렇다고 대만을 외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동맹인 미국의 압박 때문이다. 최근 주요 7개국(G7),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유럽은 미국과 함께 '중국에 대한 군사·경제적 공동 대응'을 재확인했다. 이에 더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대만 측과의 제11차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회의를 열기로 했다는 10일 성명은 EU엔 추가 압박이 됐다. 미국과 대만이 1994년 시작한 무역협정 회담인 TIFA는 2016년 중단됐지만, 올해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대만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다시 힘이 실리게 됐다.

폴리티코유럽은 "인권문제로 인한 EU의 중국 제재로 인해 양측의 무역협정이 EU에서 비준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며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는 의회 요구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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