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강국’ 쿠바가 독자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상용화 초읽기에 들어갔다. 3회 접종하도록 설계된 백신을 2회만 투여했는데도 최종 임상시험에서 높은 예방효과가 입증됐다는 평가다. 현재까지 남미에서 백신 개발에 성공한 나라는 쿠바가 유일하다. 특히 쿠바는 백신 지식재산권(지재권)도 면제하고 물량 다수를 수출할 계획이라, 백신 부족에 허덕이는 제3세계 가난한 나라들엔 상당한 도움이 될 전망이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쿠바 백신 ‘소베라나2’는 3상 임상시험에서 2회 접종만으로 예방효과 62%를 기록했다. 국영 핀라이 백신연구소 비센테 베레스 소장은 “3회 접종까지 완료하면 훨씬 우수한 효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며 “수주 안에 최종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개발 당국은 긴급 사용 승인 신청도 준비 중이다.
사실 쿠바 의료시스템은 우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1959년 혁명 이후 의료인력 양성과 의약품 개발에 공을 들여 온 탓이다. 세계 최초 뇌수막염 B형 백신, 인터페론, 중증 당뇨병 궤양 치료제 등이 쿠바 작품이다. 의사 규모(2017년 기준)도 국민 1,000명당 8.2명으로 세계 최상위다. 지난해 3월엔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체계가 무너진 이탈리아와 중남미 5개국에 의료진을 파견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코로나19 백신도 수입하는 대신, 자체 개발을 택했다. 현재 후보 5종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데, 그중 소베라나2와 압달라가 최종 시험 마무리 단계다. 소베라나는 스페인어로 ‘주권’이란 뜻이고, 압달라는 ‘쿠바 혁명의 아이콘’ 호세 마르티가 쓴 시의 제목이다. 이름에서부터 국가적 자부심이 엿보인다.
쿠바 정부는 4월 들어 베타(남아프리카공화국)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한 달 새 감염자가 3만 명이나 쏟아지자 5월 중순부터 소베라나2와 압달라 백신 접종에 돌입했다. 9월까지 인구 70%, 연말까지 전체 국민의 접종을 마치는 게 목표다.
글로벌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쿠바 백신이 상용화되면, 전 세계 백신 공급 확대는 물론 감염병 종식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쿠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백신 혜택을 누리도록 지재권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 올해 안에 1억 회분을 생산해 절반 이상을 수출할 예정이다. 로이터통신은 아르헨티나와 자메이카,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이 쿠바 백신 구입을 타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숨야 스와미나탄 세계보건기구(WHO) 수석과학자는 “WHO 기준을 충족하는 뛰어난 효능과 안전성을 갖춘 백신을 환영한다”며 “지구촌엔 보관 및 제조가 쉽고, 저렴한 가격의 백신이 필요하다”고 FT에 말했다.
물론 걸림돌이 없진 않다. 쿠바는 미국의 금수조치 및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11% 하락했다. 경제 상황 악화로 충분한 백신 원료와 생산 시설, 자금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돌파구는 동맹국과의 협력이다. 쿠바 정부는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과 백신 생산망을 구축하기로 했고, 베트남과도 압달라 백신 기술 이전 및 생산 시설 설립을 협의 중이다. 이란은 임상시험의 일환으로 올해 초부터 소베라나2 백신 생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