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나타난 무지개빛 천막… "성소수자 축복한 목사는 무죄"

입력
2021.06.21 17:51

서울 도심 한복판에 성소수자를 축복한 혐의로 교단의 재판에 넘겨진 이동환 수원 영광제일교회 목사를 지지하는 천막이 섰다.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는 21일 교단 내부의 단체들을 아우르는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공정한 재판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며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의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본부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날 오후 기감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리회 총회 재판위원회가 뚜렷한 이유 없이 재판을 미뤄왔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공대위는 재판을 공개재판 형식으로 빠른 시일 안에 열어달라고 재판위원회에 요구하는 한편,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범과(犯過ㆍ잘못을 저지름)로 규정한 교단 헌법(교리와 장정) 조항을 폐기하라고 감리회에 촉구했다. 공대위는 기자회견 이후 기감 본부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 목사는 지난 2019년 8월 인천 부평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꽃잎을 뿌리며 성소수자들을 축복했다가 지난해 기감 경기연회 재판위원회가 진행한 1심 재판에서 정직 2년 처분을 받았다. 경기 총회 재판위원회가 2심 재판을 맡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첫 공판은 아직까지 열리지 못했다. 2월에는 이 목사가 공개 재판을 요구하면서 재판부(2반) 전원을 기피신청하면서 공판이 무산됐고, 3월에는 새로운 재판부(1반)가 재판을 맡았으나 어렵게 열렸던 공판은 본안은 다뤄보지도 못하고 다시 파행했다. 재판위원장이 애초에 이 목사를 1심 재판에 넘겼던 기감 경기연회 자격심사위원회에 참여했던 사실이 재판 당일에 확인됐기 때문이다. 경찰이 재판장을 맡은 셈으로 이는 교회법이 정한 제척 사유다.

공대위는 이후로 총회 재판위원회가 별다른 이유 없이 재판을 지연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공대위는 “재판 행정에서 제척될까 두려웠던 조남일 목사는 (3월의) 공판 당일이 되어서야 이동환 목사의 면전에서 사퇴해버렸다”면서 “이러한 사태를 책임져야 할 감리회 행정이 공개재판도, 재판위원장의 공백도 해결하지 않고 있어 재판은 기한 없이 지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공대위는 “이로 인해 이동환 목사는 지난 개월 동안 변론을 단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채 재판에서 소외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수원 영광제일교회 측은 한 명뿐인 담임목사의 직무가 정지돼 교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호소해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승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소장(목사)은 “우리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이 상한 자들, 눌리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이 세상에 구현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며 교회 공동체와 목사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이라면서 “기독교대한감리교회에서 이동환 목사가 소수자를 위해 축복했다는 이유로 단죄한 일은 한국교회와 사회를 비롯하여 나아가 국제 에큐메니칼 공동체에서도 매우 부끄러운 일로 회자될 것”이라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 기감 본부는 공정한 재판을 열기 위해서 노력해왔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 3월 재판이 파행한 이후, 대책위원회와 물밑에서 접촉하며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대책위원회가 최근까지 응답하지 않았다는 해명이다. 기감 본부의 부장급 관계자는 “대책위에 2판 재판부의 몇몇에 대해서만이라도 기피 신청을 취소하면 그 인원이 1반으로 넘어가서 재판위원장을 맡고 재판을 속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면서 “대책위는 지난주에야 비로소 공문을 보내왔는데 그 사이에 시간이 흐르면서 형이 확정돼 버린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시 대화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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