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대나무숲 '블라인드'를 어찌할꼬… 기업들 골머리

입력
2021.06.2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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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감추고 싶은 내용 잇따라 폭로
악의적 루머나 억측이 퍼지는 일도
대응 컨설팅 받고, 가입 제한하는 경우도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의 인사팀원인 A씨의 하루 업무 시작은 직장인 익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블라인드' 응용소프트웨어(앱) 검토로 시작된다. 자사 게시판과 IT라운지 게시글 확인이 주요한 업무로 주어지면서다. 매월 퇴사자 명단을 블라인드 퇴사자 요청페이지에 제출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A씨는 "아마 국내 대부분의 기업에서 상시적으로 블라인드 게시판을 체크할 것"이라며 "회사에 말 못할 내용들이 올라올 때는 속이 시원하기도 한데, 가끔 말도 안 되는 억측이 올라올 때는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블라인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익명 게시판이다 보니, 민감한 조직 문화가 폭로되거나 대외비로 취급된 근무 환경도 속속 공개되고 있어서다. 이 과정에선 미확인 소문이 돌거나 회사를 음해하려는 시도도 벌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을 위한 블라인드 대응 프로그램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성 철저 보장'...직장인 가려운 곳 긁어주는 블라인드

2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출시한 블라인드의 가입자 수는 5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용자들의 재직 회사 수는 7만 개 이상으로, 국내 재직자 300인 이상 기업체 근로자의 85% 이상이 블라인드를 사용 중이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도 40분에 이른다.

블라인드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익명성이다. 블라인드는 가입 시 이름이나 나이, 성별, 전화번호 등 어떠한 개인 정보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가입자가 해당 회사 소속인지 확인하기 위해 회사 이메일 계정으로 인증만 진행한다. 이후 앱 내에서 활동할 때는 가입 이메일과 완전히 다른 데이터를 생성한다. 이 과정에 암호화 작업까지 거치는 만큼 블라인드 관계자조차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알 수 없다. 본사와 서버도 미국에 있다.

보장된 익명성 덕분에 블라인드엔 종종 기업 내부자의 폭로가 올라와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14년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비행기를 돌린 '땅콩회항' 사건은 블라인드 게시판에서 처음 밝혀진 바 있다. 지난 3월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꼬우면 이직하라"는 글이 논란이 되면서 경찰 수사까지 벌어졌으며,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일어난 '직장 내 괴롭힘' 사건도 블라인드를 통해 확산됐다.


가입 차단까지 시도하지만..."투명한 조직구조 갖추는 것이 중요"

기업에선 블라인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동종업계 관계자들도 게시글을 볼 수 있는 만큼 회사 이미지 실추는 가장 큰 부담이다. 한 IT업체 관계자는 "아무래도 불만이 있는 직원 중심으로 블라인드에 글을 쓰다 보니 외부에서 봤을때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며 "일부 퇴사자들의 경우 악의적인 글을 쓰거나 노조가 자기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목적에서 블라인드 게시판을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에선 블라인드 가입을 막기 위해 블라인드 인증 메일을 차단하기도 한다. 심지어 문제 게시글을 보면 단체 '신고하기'로, 해당 글을 숨김 처리까지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직장인들 사이에선 회사 측의 이런 조치를 피한 대응 방법도 공유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통제 불가능한 블라인드에서 '잠재적인 폭탄'이 터지기 전에 먼저 나서서 직원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SK텔레콤, 네이버, 카카오 등은 올 초 블라인드를 중심으로 성과급 논란이 불거지자 공식적으로 최고경영진(CEO)과의 대화 자리를 열어 대응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블라인드 게시판에는 매일 조직 문화나 처우 등에 대한 직장인들의 솔직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결국 회사가 '블라인드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선 과거와는 다른 소통 방식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는 블라인드의 순기능"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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