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 이후 쿠팡의 미온적인 대처에 소비자들의 분노가 거세지고 있다. '무책임한 경영자에 더해진 비윤리적인 기업'이란 혹평이 확산된 가운데 인터넷상에선 쿠팡 탈퇴와 함께 불매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쿠팡 탈퇴’ 운동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쿠팡을 더는 이용하지 않겠다며 회원들의 탈퇴 인증 게시물도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분노는 그동안 보여준 쿠팡의 형식적인 행태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1년 동안 쿠팡 배송과 물류센터 노동자 9명이 사망했는데, 쿠팡은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노동자 이슈를 회피하기만 했다. 김범석 창업자는 과로사 문제로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요구받았지만, 이 자리엔 엄성환 쿠팡풀필먼트 전무가 참석해 대리 사과했다.
김 창업자가 국내 법인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시점도 공교롭다. 이천 화재가 발생한 17일 오전 11시 쿠팡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 창업자가 국내법인 책임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쿠팡 측은 이에 대해 “김 창업자는 5월 31일 이미 이사에서 사임했고, 6월 14일 주주총회를 통해 의결된 사안”이라며 “오전에 나온 언론보도에 대한 질의가 이어져 17일 발표한 것일 뿐 다른 목적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경영 이슈에서도 쿠팡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김 창업자의 사임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의식한 '꼼수'란 지적이 대표적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사업주가 안전 확보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에게 형사처벌까지 부과되는 내용이 핵심이다. 김 창업자는 국내 경영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쿠팡은 올해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기업 경영의 주요 리스크’라고 기재한 바 있다.
김 창업자는 공정위의 총수 지정을 피하면서 각종 규제에서도 빠졌다. 공정위는 4월 29일 쿠팡을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대기업 집단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각종 공시의무 등의 대상이 되는 동일인(총수)으로 김 전 의장 개인이 아닌 쿠팡 법인을 지정했다. 외국 국적인 개인의 동일인 지정은 지금까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김 창업자는 한국 쿠팡 지분 100%를 보유한 미국 상장법인 쿠팡 아이엔씨(Inc.)의 의결권 76.7%를 보유했지만, 국내 대기업 총수에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일가 및 특수관계인의 사익 편취 제재 등 공정거래 규제에선 제외됐다.
김 창업자의 사임 배경에 대해 쿠팡 측은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기 위함”이라는 입장만 재차 강조했다.
덕평물류센터 화재 사고에 대한 쿠팡의 대응 또한 논란이다. 쿠팡은 화재 발생 3일이 지나서야 고개를 숙였다. 비난이 확산되자, 김 창업자는 지난 19일 오후 김동식 소방관의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20일엔 강한승 대표이사 명의로 ‘故김동식 소방령님 유가족과 덕평물류센터 직원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쿠팡은 “정기적인 비상 대피훈련 덕분에 근무자 248명이 전원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화재를 통해 안전을 위한 노력은 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사과했다. 또 덕평물류센터는 4개월 동안 전문 소방업체에 의뢰해 상반기 정밀점검을 완료하고 소방 안전을 위해 필요한 추가적인 개선 사항을 모두 이행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쿠팡은 △김 소방령 유가족 지원을 위한 ‘김동식 소방령 장학기금’ 마련 △화재 진압 중 부상 입은 소방관 지원 △덕평 물류센터 상시직원 급여 정상 지급 △단기직 직원 전환배치 기회 제공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