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은 노화나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신체·가사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보험제도다. 수혜자가 되려면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으로부터 심사를 받고 요양등급을 부여받아야 하는데, 현행 심사제도는 외견상 사각지대를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촘촘해 보인다.
그러나 자립 능력이 없음에도 요양등급을 못 받는 조형섭씨(관련기사: 혼자 두면 쓰레기 골방서 굶주리는데… 요양 신청은 거부됐다), 골반 골절로 거동을 못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요양등급을 받은 유정숙씨(관련기사: 골반 부러져 홀로 집에 갇혀도… 너무 높은 요양급여 벽) 등 복지망이 작동하지 않는 사례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상도재가복지센터를 세워 운영하고 있는 원영숙 센터장과 임진화 나사렛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행 제도라도 잘 지켜지도록 공단과 관공서가 함께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2016년부터 건보공단의 위탁을 받아 노인돌봄 사업을 하고 있는 민간 방문요양기관으로, 요양급여 대상자 관리는 물론이고 공단이나 지자체 손이 닿지 않는 현장에서 소외된 노인을 살피는 활동으로 정평을 얻고 있다.
요양등급 인정 신청을 하면 공단이 신청자 집을 방문해 몸 상태를 면밀히 살피는 게 첫 수순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런 가정 방문부터 성사되기 쉽지 않다. 원 센터장은 "공단 담당자가 심사 절차를 밟기도 전에 전화로 '상태 좋아요?' '걸을 수 있어요?' 등을 묻고, 신청자가 '그렇다'고 답하면 '어차피 등급이 안 나올 텐데 그래도 신청할 거냐'며 임의로 잘라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심사도 받지 못하고 전화로 거절당하는 사례가 열 건 중 한두 건은 된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공단이 요양등급 신청 취소를 종용한 바로 그날, 신청 당사자가 쓰러지는 일도 발생한다. 이 노인은 중환자실로 이송돼 3개월간 입원해야만 했다. 보호자도 없는 노인을 대신해 센터가 공단에 항의했지만, 공단은 "죄송하게 됐지만, 등급이 안 나오는 사례가 많아 미리 거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가정 방문이 이뤄져도 적절한 등급을 받기는 여전히 어렵다. 65개 항목 조사와 25개 욕구 조사로 구성된 '장기요양인정조사표'만으로는 현장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다. 2019년 9월 개정된 최신 조사표를 보면, 신체 기능 영역의 경우 '세수하기' '양치하기' '화장실 사용하기' 등 10가지 항목에 대해 각각 '완전 자립' '부분 도움' '완전 도움' 중 하나를 체크하도록 돼 있다. 원 센터장은 "'화장실 사용' 항목만 해도 '변기 뚜껑 올리기' '용변 뒤처리하기' '물 내리기' '수도꼭지 틀기' 등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소가 있는데 그것들이 세세하게 평가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심사 담당자의 자의적 판단도 문제다. 임 교수는 "같은 공단에서 같은 조사표로 심사하는 데도 담당자에 따라 등급 인정 여부가 달라지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근력 테스트는 신청자가 손・발에 힘을 주면 담당자가 이를 받쳐보는 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담당자나 신청자 체급에 따라 주관적으로 점수가 매겨지기 쉽다. 원 센터장은 "더 큰 문제는 점수가 들쭉날쭉 매겨져도 당사자는 경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단 및 지자체가 민간 기관을 협력 파트너보다는 관리・감시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도 복지 체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된다. 원 센터장과 임 교수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어도 민간 기관 사람이라는 이유로 좌절을 겪는 일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임 교수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 신고하면 '자녀 아니죠?' 같은 질문부터 듣는다"며 "민간 요양기관이 그저 수익을 늘리려고 복지 대상자를 발굴한다고 오해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애써 대상자를 찾았다가 질책을 받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올해 초, 원 센터장과 임 교수는 알코올중독으로 빼빼 마른 30대 B씨를 발견했다. B씨는 밥은커녕 소주만 페트병 단위로 들이마셨고 비운 병에다 소변을 봤다. 이미 동사무소의 관리 대상으로 지정돼 쌀과 반찬 등을 받고 있었지만 이는 문간에 쌓여만 있었다. 이들은 B씨 사례를 곧바로 동사무소에 신고했다. 센터에서 어떻게든 봉사자들을 동원할 테니 관공서에서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며칠 뒤 두 사람은 관할 구청으로부터 "이미 동사무소 업무인데 왜 민간 기관이 신고를 했느냐"는 어이없는 책망을 들었다. 알고 보니 동사무소가 "우리 담당 업무를 침해했다"며 구청에 센터를 신고한 것이었다.
사회 구석구석 자리한 복지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해소하려면 민관 협력이 필수적인데, 당국의 소극적 태도와 뿌리 깊은 권위주의는 현장의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다. 원 센터장은 "어르신들은 복지 제도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큼, 소외된 노인을 발굴하려고 현장 봉사자들이 많이 노력한다"며 "그런데 공단은 이를 독려하기보다는 외려 센터 사람이 등급 외 노인을 돌봤다는 사실을 알면, 급여를 정산할 때 그 시간을 제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공단 등도 재원이나 행정력 한계 등 애로를 겪는다. 다만 원 센터장은 "'어려운 노인 모두에게 요양등급을 주자'는 게 아니라 '모든 노인이 납득할 수 있게 등급을 주자'는 게 현장의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돈과 인력의 한계가 있다면 그에 맞춰 현장에서 따를 수 있는 운영 기준을 마련하면 될 것"이라며 "다만 등급 산정 과정은 현행 제도와 원칙대로 이행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어르신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복지 공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현장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제도권 안으로 포섭한다'는 복지중심적 사고를 가장 중점을 둔다"고 강조했다. 복지중심적 사고를 제도에 반영할 방법을 묻자 임 교수는 "'자리'부터 마련돼야 한다"는 간단한 답을 내놨다. "관공서와 공단으로부터 질문을 한 번만 받아보고 싶거든요. '현장에서 어려운 점이 뭔가요?'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가 좋아질까요?' 그런 뻔한 질문들요. 우린 결국 협력자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