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7 재·보궐 선거 직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캠프사무실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했던 게 화제가 되었다. 해당 맵에서 좀처럼 쓰지 않는 전술과 엉성하게 지어진 건물들로 인해 그의 실력 논란이 빚어질 정도였다. 물론 한국 남성이 스타크래프트를 한다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이준석 스타’가 화제가 된 이유는 하나. 바로 유명 정치인이 우리 문화를 함께 향유하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인지하고 공감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반가운 마음에 스타크래프트를 실행했다. 오랜만에 접속한 배틀넷은 여전했다. 요즘 누가 스타를 할까 생각했지만, 그 순간에도 수만 명의 동시 접속자가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로템 1:1 초보만’이라는 이름의 방에 들어갔다. 로스트템플이라는 맵에서 1:1 대결을 펼칠 초보를 구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진짜 초보들끼리 싸우는 건 또 아니다. 그 판도 그랬다. 초보만 오라던 상대는 1,000승이 넘었고 승률도 70%에 육박했다. 게임 내내 그의 공격을 막기만 하다가 결국 패배를 선언했다. 초보를 가장한 준프로의 플레이는 가차없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초보라는 건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스타크래프트에는 초보가 없다. 20년도 전에 출시된, 유행이 지났어도 한참 지난 게임에 초보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사람의 대부분은 이른바 ‘고인물’들이다.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이 되었다. 그들이 자신을 초보라고 칭하는 건 못 하는 상대를 골라 쉽게 이겨보려는 요령일 뿐이다.
그래도 게임에서 그러는 건 애교다. 문제는 현실 정치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정치에 데뷔한 지 20년이 다 된 인물들이 여전히 자신은 기득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개혁과 혁신을 말한다. 고인물들이 주도하는 개혁은 그 자체로 국민에게 불행이다. 개혁의 대상을 개혁의 주체로 치환하는 까닭에서다. 그런 개혁은 공감을 살 수 없다. 동력은 이내 사그라든다.
하지만 민심은 고여 있지 않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만 봐도 그렇다. 중진의원들은 이준석의 도전에 구질구질한 네거티브로 대응하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0선, 초선들은 ‘할당제 버프(게임에서 능력을 일시적으로 올려주는 효과)’ 없이도 중진들을 밀어냈다.
여당은 이제 시작이다. 주류 세력 중 일부는 여전히 스스로가 개혁을 단행할 적임자라고 여기고 있겠지만, 아니다. 과거의 업적을 자양분 삼아 행해온 정치는 유통기한을 다했다. 자신들이 ‘아직 청춘’이라며 항변하면 할수록 고인물이 초보 행세하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염증은 커져갈 뿐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 감언이설로는 바뀌는 게 없다는 것을. 이재명, 윤석열처럼 기존 주류에 편입되지 않았던 인물들이 대권가도에서 수위를 달리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고인물 잔치가 된 게임은 망한다. 진입장벽이 높아져 보통 사람들의 유입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다채로운 색깔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이다. 뭐, 여전히 고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좋다. 우리가 떠나면 된다. 고인물판이 돼 일반인들은 아무도 안 하는 게임에서도 마니아들끼리는 즐거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