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경동맥 TAVI 시술’ 성공…대동맥 막힌 88세 할머니 생명 살려

입력
2021.06.17 19:58

80대 후반 고령의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에게 경동맥을 통해 도관을 넣어 장착된 인공 판막을 펴서 고정하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TAVI)’ 시술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했다.

고윤석 한림대성심병원 심장혈관센터 교수팀은 대퇴동맥·대동맥·쇄골하동맥까지 모두 막혀 기존 허벅지 대퇴동맥을 통한 TAVI(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 시술이 불가능했던 박화영(88ㆍ여) 환자가 경동맥을 통해 TAVI 시술을 받은 뒤 건강하게 회복했다고 17일 밝혔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심장에 있는 4개의 판막(승모판막ㆍ대동맥판막ㆍ삼첨판막ㆍ폐동맥판막) 가운데 하나인 대동맥판막이 좁아져 심장에서 온몸으로 혈류가 충분히 흐르지 못하는 질환이다. 3대 증상인 호흡곤란ㆍ흉통ㆍ실신을 방치하면 2년 평균 생존율이 50%에 그치는 치명적인 병이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약물로는 치료할 수 없고, 노화된 심장 판막을 교체해야 한다. 즉, ‘대동맥판막 치환술(SAVRㆍ수술)’이나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TAVIㆍ시술)’을 받아야 한다.

TAVI 시술은 지금까지 허벅지 대퇴동맥에 도관을 넣어 시행됐다. 그런데 고 교수는 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경동맥을 통한 시술로 환자를 치유한 것이다. 경동맥에 두꺼운 도관을 삽입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삽입 과정에서 혈관이 파열될 수 있고 급성 뇌졸중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심각했던 박 할머니는 숨이 멎을 것 같은 호흡곤란으로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박 할머니는 이미 폐까지 물이 차 스스로 호흡할 수 없었고,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급격히 나빠져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중한 상태였다.

박 할머니는 지난 2월 초 한림대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박 할머니는 이미 7년 전 협심증으로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심방세동 뿐만 아니라 혈관 협착이 심해 대동맥은 4㎜, 대퇴동맥 및 장골동맥, 쇄골하동맥은 각각 3㎜로 좁아져 있어서 시술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88세 고령 환자를 대상으로 가슴을 여는 개흉 수술은 더 위험하고, 판막은 이미 석회화가 심각히 진행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고 교수는 국내에서 시행되지 않았던 경동맥을 통한 TAVI 시술을 박 할머니에게 국내 처음으로 시행해 성공했다. TAVI 시술 후 지난달 27일 두 번째로 병원을 찾은 박 할머니는 심장이 건강하게 뛰는 것을 확인했다. 고 교수는 “박 할머니가 경동맥 TAVI 시술을 받지 않았다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고 했다.

박 할머니는 “의식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고 교수님이 계속 말을 걸고, 몸이 괜찮은지 살피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들처럼 아픈 나를 성심껏 돌봐주고 숨 쉴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박 할머니의 손녀는 “고 교수님은 생명의 은인”이라며 “할머니의 건강 상태와 시술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모두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믿고 맡겼다. 설 연휴 쉬지도 못하고 할머니를 돌봐주신 고윤석 교수님과 이종우 교수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TAVI 시술은 동맥에 도관을 삽입 후 카테터를 이용해 심장에 조직 판막을 삽입하는 고난도 시술이다. 가슴을 열지 않기 때문에 출혈이 없어 수혈이 필요하지 않다. 특히 수술 후유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중증 뇌졸중 발생률이 매우 낮다.

또한 심장 내 초음파(ICE)를 이용하면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수면마취로 시술이 가능하다. 시술 시간도 1시간 반 정도로 짧아 회복이 빠르므로 기저 질환자나 고령의 고위험군 환자에게 적합하다. 환자는 시술 다음날부터 움직일 수 있고 2~3일 후 퇴원할 수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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