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내 몸이 증거... 피해는 진행 중"

입력
2021.06.17 17:00
피해자들 '내 몸이 증거다' 피해 수기집 출간
"진상 규명·보상 아직 미흡" 사회적 관심 촉구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피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 10년을 맞아 피해자들이 자신이 직접 겪은 고통을 수기집에 꾹꾹 눌러 담아냈다. 이들은 자신의 몸이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여전히 진행 중이란 증거라며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10주기 비상행동은 17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내 몸이 증거다' 출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피해자들이 직접 써내려간 수기집 '내 몸이 증거다'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건강상 어려움을 겪는 63명(25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따르면 지난 11일을 기준으로 피해를 접수한 사람은 7,476명으로 이 가운데 사망자는 1,663명에 달한다.

비상행동은 책을 펴내면서 "천식·간절성 폐렴 등 각종 질병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것임이 인정되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면서 "(여전히) 고통받는 피해자들은 하루속히 제대로 된 피해를 인정받고 적절한 치료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절규한다"고 호소했다. 출판을 주도한 임종한 인하대 보건대학원장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은 환자의 몸이 시작이고 증거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라며 "이들의 건강한 삶을 뒷받침할 수 있게끔 돕자는 의미에서 출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피해자들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해 직접 자신의 피해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세상을 등진 가족들을 떠올리다가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고, 발언 도중 연신 기침을 하거나 병상에 누운 채 발언하는 피해자들도 있었다.

책 속에서 첫 저자로 기록된 민수연씨는 "지금도 여전히 너무 어려운 부분이 많고,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한 게 가슴 아프다"며 "모든 국민들이 함께해 피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민씨는 두 아들과 함께 천식·폐렴·미토콘드리아 손상 등의 증상을 겪고 있고, 그의 남편은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생후 50일 된 딸을 잃었다는 이장수씨는 "딸이 태어난 1995년 10월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썼는데, 딸이 태어난 지 50일 만에 숨졌다. 딸이 살아 있었으면 올해 26세인데, 매년 아이의 유골을 뿌린 곳에 꽃을 들고 찾아가고 있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이씨의 딸은 가습기살균제 첫 피해자로 추정되고 있다.

아픈 아들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이경미씨는 "주변 사람들도 옥시가 다 배상했고 끝났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 아들을 보면서 '웃을 수 있는 날이 언제 올 수 있을까' 생각한다"며 "아직도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은 만큼, 우리들 이야기를 알려 피해자들 고통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