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에 지적인 생명체는 과연 우리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럴 것 같지 않다. 확률을 생각해도 그렇고, 신이나 절대적인 존재를 상정해 봐도 마찬가지다. 무한의 우주에 지구인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오만하거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지구인은 겨우 달까지 나갔을 뿐이고, 아직 외계인은 찾아오지 않은 것일까? 많은 UFO와 외계인 목격담 중에 진짜는 얼마나 될까? 어쩌면 영화 '맨 인 블랙'에서 말하듯, 이미 외계인은 우리의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모습을 바꾸고 은밀하게 우리의 이웃이 되어 있거나, 누군가의 비호나 음모 속에서 암약하는지도 모른다.
피터 호건과 스티브 파크하우스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레지던트 에이리언'은 우리와 함께 외계인이 살아갈 때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을 그린다. 4개월 전, 그가 탄 우주선이 벼락을 맞아 불시착한다. 임무를 수행할 기구를 잃어버린 그는 콜로라도의 작은 마을 페이션스로 향한다. 휴가를 맞아 호수 옆 별장을 찾은 의사 해리 벤더스피글을 죽이고, 그의 외모로 변신한다. 이제 그는 해리 벤더스피글이다.
해리는 4개월 동안 범죄 드라마 '로 앤 오더'를 보며 인간의 행동과 관습, 대화를 익히고 새로운 몸에 적응한다. 어느 날, 보안관 마이크와 부보안관 리브가 찾아온다. 마을의 유일한 의사인 샘이 죽었으니 해리에게 검시를 맡기려는 것이다. 구글과 유튜브로 얻은 의학 지식으로 겨우 검시를 마치자, 시장 벤이 새로운 의사를 찾을 때까지만 진료센터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기구를 찾아 임무를 수행하려던 계획은 미뤄지고, 해리는 당분간 인간의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게 된다.
'레지던트 에이리언'은 심각한 SF가 아닌 가볍고 유쾌한 코미디다. 감동적이고 심오한 순간도 있지만 지나치게 무게를 잡지는 않는다. 인간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계인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해프닝, 놀라움과 즐거움 그리고 감동이 소소하게 펼쳐진다. 외계인의 행방을 쫓는 정부 조직이 등장하면서 스릴러의 긴장감도 더해지고, 때로 심각한 주제를 던질지라도 시종일관 농담처럼 전개되기 때문에 '레지던트 에이리언'은 부담스럽지 않다.
마을에 간 해리를 보는 유일한 사람은 시장의 아들인 맥스다. 특이한 유전자를 가진 극소수만이 변신한 해리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맥스가 해리를 외계인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고, 해리는 맥스가 위험요소라 생각해 죽이려고 한다. 외계인에게 지구인은 그냥 문어 같은 존재다. 인간이 문어를 잡아먹는 것처럼, 외계인도 목적이 있다면 인간을 간단하게 죽일 수 있다. '레지던트 에이리언'에서는 해리가 조상뻘인 문어와 대화하는 장면도 깨알같이 들어가 있다. 실제로 문어는 우주에서 온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레지던트 에이리언'에서 웃음이 펼쳐지는 순간은 주로 해리의 어긋난 언행과 표정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외계인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직설적으로 모든 것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게다가 '로 앤 오더'에서 배운 것이 대부분이라 범죄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은유를 주로 사용한다. 일상적인 대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병원의 간호사인 아스타를 비롯한 주민들은 단지 해리가 사회 부적응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잘해 의사가 될 정도의 지적 능력이 있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거의 하지 못하는 너드 정도.
해리의 말과 행동은 충분히 이상하지만, 사람들이 괴물이나 악마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는 보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세상에는 관계에 서툰 자만이 아니라 의도적인 폭력과 조롱, 비난을 일삼는 이들도 널려 있다. 아스타를 사랑한다면서도 가정 폭력을 저질렀던 전 남편에 비하면 해리는 아주 바람직한 시민이다. 조금 이상하고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 정도면 모범적인 이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는 과연 외계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외모가 다르고, 말이 다르면 일단 경계한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 때로는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미국도, 한국도 마찬가지다. 주류와 다른 이들을 위험하고 불결한 존재로 종종 혐오한다. '레지던트 에이리언'에서도 타자에 대한 시선이 매우 중요한 이슈로 다뤄진다. 만약 해리 벤더스피글이 백인이고 의사가 아니었다면 어색한 웃음과 부적절한 유머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흑인이었다면? 아랍계였다면?
해리의 정체를 알게 된 아스타는 함께 UFO 박람회를 가게 된다. 다양한 외계인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을 보면서 해리는 말한다. "외모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지." 그 말을 들은 아스타는 답한다. "우리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해요." 아스타는 아메리칸 네이티브, 이전에 인디언이라고 불리던 혈통이다. 아스타의 친인척 대부분은 보호구역 내에서 살고 있다. 피부색과 얼굴형이 다른 자들에 대한 차별과 조롱은 과거나 지금이나 사라지지 않았다.
해리의 임무는 지구의 인간을 멸종시키는 것이었다. 무기를 찾기만 하면 해리는 바로 작동시키고 지구를 떠날 계획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이웃이 되면서 조금씩 변한다. SF의 흔한 설정은, 외계인이 인간보다 뛰어난 과학문명을 가지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퇴화했다는 것이다. 외계인은 인간과 교류하며 감정을 배우고, 소위 말하는 인간성-휴머니티를 지니게 된다. '레지던트 에이리언'의 설정도 동일하다. 해리는 말한다. "인간은 교류가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점일지도 모른다. 희망이 있을지도."
인간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된 해리는 많은 것이 궁금하다. 보호구역에 있는 아스타의 가족을 만난 해리는 소속감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임을 알게 된다. 아스타, 다아시 등 이웃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인간은 어떻게 실패를 극복하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결코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도. 모든 것을 계획하고,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리는 너무나 인간다워졌고, 그래서 임무에 실패한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페이션스의 모든 주민이 모이는 술집에는 광부의 곡괭이와 안전모 등이 걸려 있다. 1884년 탄광에서 사고가 나서 갇힌 한 명을 구하기 위해 59명의 광부가 위험한 현장으로 들어간 사건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이다. 해리는 그것을 보고 비웃는다. 1명을 구하러 다수가 죽으러 갔다고. 하지만 그들의 이웃이 되고, '인간성에 전염'되면서 알게 된다. 전체를 죽이는 것은 간단하지만 개인을 죽이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고. 그것이 인간의 문명이 많은 단점과 악행에도 불구하고 발전해 온 이유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