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5일 인적이 드문 새벽, 택시 운전기사 A(57)씨는 충남 아산시 아파트 앞에서 승객을 태우기 위해 정차했다. 한눈에 봐도 술에 취한, 젊은 남성 B(20)씨였다. B씨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걸 본 A씨는 마스크 착용을 요청했지만, B씨는 막무가내로 뒷좌석에 앉아 출발을 요구했다.
A씨는 택시에서 내려 뒷문을 열고 B씨에게 내리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승객에 한해서 승차 거부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하차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B씨와 실랑이하다가, A씨는 "승객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다"며 112에 신고했다.
A씨가 신고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B씨의 폭행이 시작됐다. B씨는 핸드폰을 쥔 주먹으로 택시기사의 정수리를 여러 번 내리쳤다. A씨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자 이번엔 얼굴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A씨가 피를 흘리며 당황하는 사이 B씨는 돌연 운전석에 올라타더니 택시를 몰고 달아났다. B씨는 당시 무면허 운전 보호관찰대상자였으니, 무면허 음주운전을 한 것이다.
B씨는 1.5㎞를 운전하다가 대학교 앞 회전교차로에서 속도를 이기지 못해 나홀로 사고를 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긴급 체포됐다. B씨는 체포 직전 택시에 있던 동전함을 털어 3만1,600원을 훔치기도 했다.
A씨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눈 주위를 가격당해 자칫 실명할 뻔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더 맞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B씨가 경찰에 밝힌 범행 이유는 단순했다. 마스크를 쓰라는 택시기사의 태도가 기분 나빴다는 것이다. A씨를 폭행하기 전 1년 동안에도 술을 먹은 채 재물손괴, 폭행, 택시 무임승차 등 5건의 범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합의1부(부장 채대원)는 지난해 11월 강도상해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마스크를 쓰고 탑승하라는 피해자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급기야 피해자를 폭행해 상해를 입혔다"며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충격은 상당 기간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라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B씨 측은 양형 부당과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항소했지만, 대전고법은 "범행 당시 술을 마신 사실은 있지만,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B씨는 지난 4월 대법원에 상고를 취하해 징역형이 확정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운전기사 폭행 범죄(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 적용 기준)는 2017년 2,720건, 2018년 2,425건, 2019년 2,587건 등 매년 하루 6, 7건 빈도로 발생하고 있다. 경찰 신고 없이 합의로 마무리되는 사건까지 포함하면 실제 발생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시정차를 포함해 운행 중인 기사를 폭행하는 행위는 특가법이 적용돼 일반 폭행보다 형량이 높다.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승객이나 운전자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폭행과 달리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더라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운수업계나 경찰에서는 운전기사 폭행 양상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달에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미금역 인근 도로를 달리던 택시 뒷좌석에서 60대 기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C(22)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범행 당일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 된 여성을 만나 살해한 뒤 성적 욕망을 채우기로 마음먹고 흉기를 구입해 택시를 탔다. 하지만 상대 여성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생각에 범행을 단념했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데 따른 '분풀이'를 무고한 택시기사에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에는 20대 남성 D씨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난곡터널 부근 도로에서 택시기사를 쓰러뜨린 채 무차별 폭행했다. 이 사건은 목격자가 찍은 폭행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돼 공분을 샀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는 D씨가 택시 안에 구토한 것을 나무랐다는 이유만으로, 치아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는 중상해를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했다.
버스기사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지난 7일 자정쯤 서울 동대문구 정류장에선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50대 남성의 승차를 거부했다가 폭행당했다. 술에 취한 가해자의 거듭된 주먹질과 발길질에 기사는 눈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서울 강북구에서도 지난 4월 30일 마스크 미착용으로 버스 승차를 거부당한 50대가 택시를 타고 버스를 뒤쫓아와 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운전기사 폭행 사건의 상당수는 피의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다. 충남 아산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남성은 혈중알코올농도 0.2%의 만취 상태였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버스기사에게 상해를 입힌 폭행범도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도 지난해 11월 택시에서 술에 취해 잠든 자신을 깨우던 기사를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사건 경위를 살펴봐도 피해자인 운전기사가 폭행 원인을 제공했다기보다는 가해자가 운전기사를 일종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뚜렷하다. 분당구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한 C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만취 상태에서는 우발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다른 경위로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마스크 착용 요구 등 빌미가 제공되면 쌓인 분노를 기사에게 표출하는 방식으로 폭행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폭행범들이 무고한 운전기사를 범행 타깃으로 삼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운전기사를 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대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운전을 하느라 두 손을 비롯한 신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어 공격을 해도 제대로 방어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다는 것이다. 더구나 택시는 기사와 승객만 있는 폐쇄된 공간인 데다 대개 기사를 보호해줄 격벽도 없어 범행에 더욱 취약하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운전기사 폭행 빈발 요인이 되고 있다. 요즘 발생한 관련 사건 대부분은 기사의 마스크 착용 요구가 시발점이었다. 단순 폭행이 일반적이던 범행 양상이 중상해, 살인 등 흉포화하는 배경에도 코로나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활동 제한으로 이전보다 분노 해소나 표출 통로가 많이 제한됐다"며 "이로 인해 운전기사가 쉽게 범행 타깃이 되고 폭행 수준도 심각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2015년 특가법을 개정해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형량을 무겁게 했다. 그럼에도 운전기사 폭행 범죄는 매년 3,000건 내외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관련법을 강화했지만 기사 폭행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개선까진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운전기사에 대한 업무방해나 폭행은 생명과 직결돼 중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를 엄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