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 A씨와 내연 관계를 맺은 B씨. B씨는 A씨 남편이 집을 비운 틈에 부부가 함께 사는 집을 세 차례 출입했다. 이를 알게 된 남편은 B씨를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허락 없이 집에 들어왔으니, 주거침입죄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B씨가 남편의 주거의 평온을 깨뜨렸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반면, 2심은 "공동거주자 중 한 명인 A씨의 승낙이 있었으므로, 주거침입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 판단을 내린 것이다. B씨는 과연 주거침입죄로 처벌을 받게 될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B씨 사례와 같은 주거침입 사건의 대법원 판례 변경을 검토하기 위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원은 1984년 이후 공동거주자 한 명의 승낙이 있더라도 다른 거주자의 의사에 반하는 출입이라면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유지해왔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이견을 제기해왔다. 특히 학계에서는 "현재하는 거주자의 승낙이 있고, 부재하는 거주자의 주거의 평온이 사실상 깨지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반론을 꾸준히 냈다.
검찰은 기존 판례대로 '주거침입'을 주장했다. "아내의 승낙이 있었다는 이유로 남편의 의사에 반하는 B씨의 출입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또한 "공동거주자 한 명이 타인의 출입을 허락할 자유보다는 공동거주자 각자의 주거의 평온이 더 우선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B씨 같은 사례에서는 '불륜이라는 부정한 목적을 갖고 주거에 침입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남편의 평온을 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통죄 폐지로 형사적 책임은 물을 수 없지만, 불륜은 여전히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부정한 행위'라는 것이다.
B씨의 변호인단은 "집을 비운 남편의 의사가 현재 집에 있는 아내의 의사보다 우선시될 순 없다"고 반박했다. 더불어 공동거주자의 승낙으로 주거에 출입한 행위를 모두 단죄하는 건 지나친 처벌의 확대라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예컨대 회사원 둘이 동거하다 한 명이 몰래 애인을 집에 들이는 경우도 처벌해야 한다"며 "공동거주자끼리의 의견 대립은 공동체 내부에서 해결되어야지, 국가가 형벌을 통해 개입한다면 (이는) 의견 일치를 강제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B씨 같은 사례를 주거침입죄로 처벌한다면 이는 이미 폐지된 간통죄를 '우회처벌'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아내와 별거한 남편이 부부가 함께 살던 아파트에 들어간 사건도 변론의 대상이 됐다. 당시 부모와 함께 집을 찾은 남편은 처제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현관문 걸쇠를 부숴버렸다. 공동거주자가 아니었던 부모는 벌금형을 받았지만, 남편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검찰 측은 "별거기간이 1개월에 이르러 남편을 해당 아파트 공동주거자로 볼 수 없다"며 처벌을 주장한 반면, 변호인단은 "이혼 전 상태가 아니므로 자신이 살던 집에 정당하게 들어간 것"이라며 맞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공개변론과 각계 의견을 참고해 판례 변경 등 주거침입죄 적용의 최종 여부를 결론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