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여권, 미접종자 차별 논란에도 영토 넓혀간다

입력
2021.06.20 14:00
[각국의 백신 여권 활용 살펴보니]
이스라엘, 미국 뉴욕주, 덴마크 등지서
백신 인센티브 수혜 대상자 구분하는 역할
내부 이견 컸던 유럽연합도 관광 침체에
'디지털 증명서' 7월부터 전면 도입키로

개인정보 유출 및 침해, 백신접종 여부에 따른 불평등 등 각종 논란에 시달렸던 '백신 여권(또는 백신 패스)'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도입되는 추세입니다. 백신 여권은 통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거나 음성 판정을 받은 경우, 또는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완치했다는 증명서 역할을 합니다.

각국이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접종자에게 백신 인센티브를 주고 그 수혜 자격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백신 여권을 활용하면서, 백신 여권과 백신 인센티브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습니다.

실내·실외 취식 나누었던 이스라엘 '그린패스'

대표적 예가 이스라엘 백신 여권 '그린패스(green pass)'입니다. 그린패스는 백신 2회차 접종 후 1주가 지났거나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경우 발급됩니다. QR코드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발급받아 제시하면 체육시설, 레스토랑·카페, 호텔, 경기장, 극장 등의 출입이 가능하죠.

그 과정에서 같은 식당이더라도 그린패스가 있으면 실내에서, 없으면 실외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차별도 발생했습니다. 이에 수도 텔아비브에선 "그린패스가 사회를 두 계층으로 나눈다"며 시위도 일어났죠.

우여곡절 끝에 성인 인구의 약 81%가 백신을 완전 접종한 현재는 그린패스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각종 시설의 출입을 허용하겠다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폐쇄된 장소에서의 마스크 의무 착용만 유일한 방역 조치로 남게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뿐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백신 여권은 백신 인센티브 수혜자를 판별하는 기능을 해 왔습니다.

미국 최초의 백신 여권인 뉴욕주의 '엑셀시오르 패스'는 백신을 완전 접종했거나 진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인증해주는 앱입니다. 앱에서 부여한 고유의 QR코드를 보여주면 모임 인원 제한과 상관없이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문화·예술 행사를 즐길 수 있습니다.

덴마크는 유럽연합(EU)의 백신 여권 도입 이전에 자체 개발한 앱 '코로나파스'를 사용했는데요. 소지자에게는 식당 출입, 콘서트·스포츠 경기 관람이 허용됩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 음성 판정을 받거나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회복된 사람에게 발급되죠.

2월 백신 여권을 도입한 헝가리는 지난달부터 소지자에 한해 식당 및 문화·체육 시설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헝가리는 전자 증명서가 아닌 플라스틱 카드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회복한 사람은 물론, 백신을 1번만 맞은 사람도 이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검사나 격리 없는 이동 보장도

물론 국가 간 자유로운 왕래에 초점을 맞춰 백신 여권을 도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U가 14일 공식 승인한 '디지털 코로나19 증명서(EUDCC)'가 대표적입니다. 다음 달부터 전면 도입되는데요. 27개 회원국 중 그리스, 독일,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폴란드, 체코 등지에서는 1일(현지시간) 먼저 출시됐습니다.

EUDCC는 접종 완료자뿐만 아니라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과 코로나19 완치자가 받을 수 있는데요. 소지자는 다른 EU 회원국으로 이동할 경우 코로나19 검사와 격리 의무가 면제됩니다. 단 각 나라의 코로나19 유행 상황에 따라 제한 조치가 추가될 수는 있다고 하는데요.

EU는 그러나 의료정보 노출, 비접종자들에 대한 역차별 주장 등을 의식한 듯 '백신 여권'이라는 표현은 삼갔습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 수석대변인 에릭 마메르는 5월 "여권이 아니라, 개인의 의료 상황을 설명하는 문서"라고 설명했습니다.

내부 이견에도 불구하고 EU가 백신 여권을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관광 산업 침체' 때문입니다. 세계여행관광협회(WTTC)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내 관광객 소비 규모는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보다 64% 급감했다고 해요.

세계 최초로 올해 1월 백신 여권을 도입했던 아이슬란드도 3월 26일부터 접종 증명서 소지자에게 검사 및 격리 의무를 면제하고 있는데요. 당시 AFP는 "관광객 증대를 기대한 조치"라고 분석했죠.

3월부터 백신 여권을 사용한 중국도 '국제여행을 위한 건강증명서'로 활용하기 위해 도입했는데요. '국가 간 백신 접종을 상호 인증하자'는 차원에서 내놨다고 하죠.

중국 백신 여권은 약 10억 명이 사용하는 중국 메신저 '위챗 미니프로그램' 내 '건강코드(찌엔캉마·健康码)' 기능을 활용합니다. 그 안엔 백신 접종 이력, 유전자 증폭 검사 결과, 항체형성 유무는 물론 백신 제조업체와 종류, 접종 날짜 등 모든 정보가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도입이 늦었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자국민의 해외 여행 지원을 목적으로 발행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여름 도입을 목표로, 우선 종이로 발급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도 조금씩 대두되는 불평등 문제

한국에선 4월부터 사용 중인 쿠브(COOV) 앱과 종이 증명서,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에 부착하는 접종 확인 스티커(만 65세 이상) 등이 백신 여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백신 여권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전망인데요. 이달부터 접종자에 한해 모임 인원 제한에서 제외하는 등 각종 인센티브 정책이 시행되고 있고, 다음 달부터는 접종 완료자는 '트래블 버블(국가 간 결정한 여행 안전 권역)' 지역으로 해외 단체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음 달부터 1차 접종자에게 부여하는 혜택이 대폭 강화되면서 차별 논란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1차 접종자는 야외에서 마스크 미착용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스포츠 관람, 영화관 내의 별도 구역에서 음식 섭취가 가능하게 되는데요.

한 야구 커뮤니티 이용자는 "20대, 30대는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전 국민이 1차 접종을 끝낸 뒤 혜택을 제공해야 공평한 게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또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백신 인센티브를 언급하며 "코로나 백신 접종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기고 있다지만 사실상 강제적"이라며 '백신 여권, 그린패스 및 코로나 백신 접종 강요를 반대한다'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청원자는 "백신 미접종자는 잠재적 코로나19 전파자로 낙인찍힐 것"이라며 "차별이나 혐오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백신은 코로나19 확산을 멈추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며 "백신 여권은 차별이 아니라 인센티브다. 인센티브라도 없었으면 노쇼백신이라도 맞으려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많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팽팽합니다.

해외로 범위를 넓혀서 생각하면, 백신 접종이 일부 선진국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정의 문제는 제기될 수 있습니다. 3월 세계보건기구(WHO)도 같은 이유로 백신 여권에 반대한다고 밝혔죠. WHO는 "백신의 접종 면역력이 얼마나 오래가는지도 모른다"며 실용적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백신 여권, 그리고 백신 인센티브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의 삶을 회복할 대안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 이점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 뒤에 존재할 새로운 차별과 배제 역시 간과하기 어려운 지점 아닐까요.

윤주영 기자
장윤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