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업계를 '쓰레기산 해결사'로 만든 마법

입력
2021.06.19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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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NN의 보도로 국제적 망신을 산 20만 톤 규모 '의성 쓰레기산'이 지난 3월 말끔히 사라졌다. 경북 의성군 폐기물처리장에 쌓여 있던 불법 방치 폐기물이었는데, 2018년 12월 대형 화재가 나 5개월 동안 꺼지지 않는 등 2차 환경오염까지 유발하면서 의성군이 골머리를 앓던 터였다.

쓰레기산 처리의 일등 공신은 다름 아닌 국내 시멘트 업체였다. 산처럼 쌓인 폐플라스틱·폐타이어 등 합성수지 폐기물을 가져다 시멘트를 제조할 때 유연탄 대신 열에너지원으로 사용했다. 지난해 배달음식 수요 폭증으로 늘어난 폐기물을 처리할 돌파구로 아이러니하게 '굴뚝산업'이자 '오염산업'으로 꼽히는 시멘트 업계가 팔을 걷어부친 것이다.

한편에선 폐플라스틱이 연소될 때 오염물질이 더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여러 화학물질로 구성된 플라스틱이 연소되면서 염소와 칼륨 등이 농축된 분진인 '시멘트 킬른 더스트'가 다량 방출될 것이란 우려다. 시멘트 업계는 무슨 마법을 썼길래, 골칫덩이 폐플라스틱을 순환자원으로 활용하는 걸까.

시멘트는 어떻게 환경오염 주범이 됐나


시멘트가 처음부터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찍혔던 건 아니다. 7,000년 전 이집트에선 피라미드를 축조할 때 돌과 돌을 붙이는 용도로 석회와 석고를 혼합한 시멘트를 썼다. 로마인도 도시 인프라 건설에 석회에 화산재를 섞은 시멘트를 사용했다.

오늘날의 ‘포틀랜드 시멘트’는 1824년 영국의 벽돌공 조셉 애스프딘이 석회석과 점토를 혼합해 가마에 굽는 이중 소성 방식을 개발하면서 탄생했다. 이후 시멘트는 건축·토목 건설의 주재료로 1960년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중추가 됐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문명 진화의 변곡점에는 늘 시멘트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멘트는 환경을 망치는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했다. 탄소가 다량 농축된 유연탄은 연소 과정에서 질소산화물, 이산화탄소 등을 발생시킨다. 또 열을 가하는 소성 공정에서도 시멘트 주 원료인 석회석이 분해되면서 탈탄산화 반응을 일으켜 이산화탄소를 다량 배출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유연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시멘트 업계 입장에선 연료비 절약 차원에서도 순환자원 재활용이 절실한 셈이다.

폐플라스틱을 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석유 성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폐합성수지, 폐고무, 폐목재 등 가연성 폐기물의 열량은 약 7,500㎉로 유연탄(5,000㎉)에 비해 높다. 그만큼 효율성이 높아 태우는 연료 사용량도 감소하게 된다.

또 시멘트 소성로는 최고 온도 2,000도에서 폐기물을 완전히 녹여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 배출도 거의 없다. 폐타이어나 폐합성수지는 유연탄보다 질소 함유량이 적어 미세먼지 주범인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감소하는 효과도 있다는 분석이다.

2000도로 완전히 녹여… 연료가 되는 폐기물

시멘트 제조 과정은 크게 석회석을 캐내는 채광 공정, 채광한 덩어리에 기타 부원료를 혼합해 분말로 분쇄하는 원료분쇄공정, 분쇄된 원료를 가열해 클링커를 제조하는 소성 공정, 클링커에 석고 및 첨가재(석회석, 슬래그 등)를 첨가해 잘게 부수는 분쇄 공정 등으로 나뉜다. 이중 핵심 과정인 소성 공정에서 유연탄 대신 화학 성분이 유사한 폐기물을 연료로 투입한다.

중간처리업체에서 선별해 들어온 폐합성수지 등 폐기물은 각 회사별 저장고로 옮겨진다. 보통은 중간처리업체에서 분쇄해 온 폐기물을 그대로 쓰지만, 이물질이 포함된 폐기물은 체인 컨베이어를 통해 전용 분쇄설비로 옮겨 잘게 분쇄한다.

폐기물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이물질을 분리하고 순환자원만 연료로 사용해 설비 오작동이나 수명 단축을 방지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분쇄된 폐기물은 보통 시간당 50톤 가량이 예열실로 투입돼 연료로 사용된다.

폐타이어는 직경 4~6m, 길이 70~100m에 달하는 원통형 소성로에 바로 밀어 넣기도 한다. 유연탄은 수분을 없애고 연소성을 높이기 위해 분말로 분쇄한 후 투입하지만, 폐타이어는 유연탄처럼 미세하게 파쇄하지 않아도 된다. 소성로 안이 워낙 고온이라 재가 남아도 완전 용융돼 시멘트 반제품인 클링커가 되기 때문이다.

시멘트의 주 원료는 석회석, 규석, 점토, 철광석 등으로 구성된다. 폐타이어의 철심은 철광석을, 합성고무는 연료인 석탄을 대체할 수 있다. 거대한 소성로 안에서 원료들의 광물이 분해되고 각종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클링커가 만들어진다.

업계는 소성 공정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배기가스를 회수해 전력을 생산하는 폐열발전에도 힘을 쏟고 있다. 생성된 클링커는 냉각실에서 100도 이하로 급냉시키는데, 이때 1,200도까지 올라가는 폐열을 회수한다.

이 열로 증기터빈을 가동해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시멘트 생산 과정에 재사용하는 것이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시멘트 업체의 폐열발전 설비 용량은 약 140메가와트(MW)으로 가동률이 80% 수준일 때 온실가스 감축량은 연간 50톤에 달한다.

폐플라스틱은 오염물질 배출 않을까

다만 폐기물 사용에 따른 유해성은 논란거리다. 몇몇 환경운동가들은 폐기물 연소로 염소가스가 발생해 분진 폐기물인 '킬른 더스트'가 배출되며 시멘트 내 중금속 농도도 높아져 품질에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다. 킬른 더스트의 알칼리와 염소 성분은 소성로 동체 내부에 부착해 원료 이송을 방해하면서 소성로 운영의 안정성을 떨어트리고 시멘트 내 중금속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시멘트 업계와 전문가들은 클링커에 중금속이 포함돼도 유해물질이 용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시멘트 업체의 생산기획 관계자는 “중금속이 함유돼 있어도 시멘트가 굳으면 이를 잡아줘 중금속이 밖으로 용출되지 않는다”며 “성분이 안에 있는 것과 밖으로 용출이 되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논란과 별개로 업계는 폐기물 사용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한국 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시멘트 업계의 순환자원 사용량은 2016년 125만 톤에서 지난해 172만 톤으로 늘었다. 업계 1위 쌍용C&E는 연간 150만 톤씩 사용하던 유연탄을 2030년까지 0톤으로 떨어트리기로 했다. 한일시멘트, 삼표시멘트 등 다른 업체도 수백억 원을 들여 순환자원 재활용을 위한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폐기물 처리, 탄소배출 절감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권 사업뿐 아니라 연료비 절감까지 누릴 수 있어 여러 방면에서 ‘뉴 환경산업’으로 부상 중”이라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