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판이라는 말은 해적들이 항해하는 배를 공격하고 약탈하는 것 같은 행동을 말한다. 과거 한국의 출판 현실이 이런 경우가 많았다. 해외로부터의 정보 유입이 제한적이었고 해외여행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엔 좋은 서적을 가지고 와서 책을 만들어 팔아도 해외에선 그것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또는 출판계약은 최소단위로 해 놓고 그 이상으로 발행을 해서 팔아도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해적판의 행위는 저작권법과 연관이 된다. 하지만 저작권법의 현실적인 적용이 아직도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저작권법의 기본 구조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의 형태를 띤다. 즉, 그동안 저작물에 대한 재산권을 인정받아 오지 못한 작가나 계약 간 을에 속하는 사람들의 이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방향에서 저작권법은 형성돼 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갑에 속하는 출판사에도 선의의 불이익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동화책을 출판했는데 그림작가가 다른 작가의 그림을 카피해서 분쟁이 생겼을 때 출판사는 해당 그림이 들어간 책을 전량 회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와 작가 간의 분쟁이 출판사에까지 영향을 끼쳐서 큰 손실을 겪게 되는 경우이다. 초기 문화적 약자를 위해 연구되어온 저작권법이 이제는 보편적인 가치로 대중화될 필요성을 느낀다.
얼마 전, 관에서 추진한 사업의 설계와 제작을 맡았던 용역사 대표를 만났다. 약 4개월 정도 고생해서 해당 시설을 납품했다. 기본 기술과 지식은 자신의 회사 것이었고 관에서는 이를 좋게 여겨서 진행한 사례였다. 하지만 해당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나서 언론에는 실제 개발자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든 공은 해당 관으로만 소개가 되었고 불편한 관계가 되기를 꺼려서 그냥 참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건축물이 지금도 지어지고 진행되고 있다. 보통 건축물 하나를 짓기 위해 건축사가 해야 하는 업무는 50가지 이상이 된다. 도면 작업 말고도 법적 검토 각종 인허가 민원 해결 등 복잡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뿐인가? 클라이언트의 요청과 변화에 따라서 그 많은 업무가 손바닥 뒤집듯 변경될 때마다 전체 공정을 다시 손봐야 하는 일을 수행한다. 실질적인 해당업무의 최고 공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름 석 자 건축물에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준공식 현장에 초대라도 받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결재권자가 중심이 되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다. '내가 내 돈으로 시킨 일이니 그건 내 것이다'라는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럴까? 내가 돈으로 산 것은 전문적인 능력일 뿐이다. 전문가의 능력을 나를 위해 사용해 달라는 부탁인 것이다.
전문가들의 가치란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해온 인생의 가치이다. 그것을 단 몇 개월 금전으로 샀다고 해서 상대방의 인생을 다 샀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건강한 대중문화 정착의 기준은 돈이 아니라 작가적 가치로 향해야 함을 느낀다. 준공식 때 수고한 사람들이 함께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축하할 수 있는 문화가 우리 건축공간 안에 당연한 상식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법은 분쟁을 위한 도구가 아니고 최소한의 기준을 위한 척도로 자리함이 마땅하다. 서로의 능력을 존중하는 사회가 가치 있는 선진 사회임을 명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