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에서도 '오월의 청춘'은 사랑을 했다

입력
2021.06.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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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오월의 청춘'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강 작가·송민엽 PD 인터뷰

1980년 광주에서도 '오월의 청춘'은 사랑을 했다. 희태(이도현)와 명희(고민시)는 "그 오월이 여느 때처럼 그저 볕 좋은 오월이었더라면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아갔을 사람들"이다. 이미 눈치챘듯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두 사람은 맞잡은 두 손을 놓치고 만다. 지난주 종영한 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은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그 일이 평범한 이들의 삶에서 무엇을 앗아갔는지, 그럼에도 그들은 어떻게 사랑하고, 살아남았는지 보여준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월은 왔다. 희태에겐 명희를 잃고 맞은 마흔한 번째 오월이다. 역사는 인간의 마음 속에서도 흐른다. '오월의 청춘'은 1980년 그날부터 오늘까지, 그 마음들의 역사를 기록한 드라마다.



"평범한 청춘에게 닥친 벼락 같은 일... 나라면?"

'오월의 청춘'은 '레트로 휴먼 멜로'라는 장르적 외피를 취한다. 시국에는 관심없고,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게 목표인 의대생 희태와 광주 한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면서 독일 유학을 꿈꾸던 명희는 당시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먼 발치에 서 있던 인물들이다.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기로 한 그날, 공교롭게 계엄군이 들이닥쳐 발이 묶인다.

"희태와 명희 입장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일종의 자연재해, 벼락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오월의 청춘'을 연출한 송민엽 PD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월의 청춘'은 당시 젊은이들이 사랑하고 슬퍼하고 미워하는, 보편적인 감정을 그린 드라마"라며 "평범한 이들이라면 정치적 행동을 취하기보다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을 할 텐데 그런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좇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가만한 인생에 벼락 같은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위험을 감지한 희태는 광주를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명희는 눈앞의 환자를 두고 떠나지 못한다. '역사가 스포일러'인 탓에 두 사람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더 애닲다. 이들의 운명적 사랑에 포개지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시대의 아픔에도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다. 영리한 접근이다.



"역사에 없는 사실은 한 줄도 적지 말자는 각오로"

서면으로 만난 이강 작가는 시대적 배경에서 따를 수 있는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역사에 없는 사실은 한 줄도 적지 말자는 각오로 임했다"고 했다. 이 작가와 송 PD, 주연 배우들 모두 1980년을 경험하지 못한 만큼 꼼꼼한 취재는 필수였다. 전남대 법학과 '잔다르크' 수련을 연기한 배우 금새록은 실존 인물 천영초의 삶을 그린 '영초언니'를 읽고, 이도현은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그 시대에 접근했다. "처음 자료 조사를 시작했을 때는 역사적 비극과 떠난 이들을 보고자 했는데 어느 순간 수많은 텍스트 뒤 '남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모든 증언과 자료들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눈물로 남겨둔 기록으로 느껴졌어요. 남아있는 분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오월의 청춘'을 썼습니다.(이 작가)"


'오월의 청춘'은 2013년 출간된 '오월의 달리기(김해원 저)'를 원작으로 한다. 전남 대표 육상 선수로 뽑혀 광주 합숙소에서 전국소년체전을 준비하던 초등학생 명수의 눈에 비친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동화다. 이 작가는 명수의 누나 명희 등 이야기를 더해 '오월의 청춘'으로 각색했다. 빨치산 전력의 부친 때문에 숨죽여 살던 명희 아버지 현철(김원해), 시위를 하다 징집돼 계엄군으로 투입된 희태의 친구 경수(권영찬), 무고하게 연행됐다 풀려나 시민군을 돕는 지역 유지의 아들 수찬(이상이) 등 당시 광주에 있던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로 한결 촘촘해졌다. 이 작가는 "전후 세대였던 현철로부터 1980년의 청춘 명희, 그리고 다음 세대인 명수까지 이어지는 달리기에서 기꺼이 서로의 바람막이가 돼주려는 가족의 사랑을 이야기의 끝으로 그려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1980년 5월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오월의 청춘'은 1980년 5월 광주에만 점으로 머물지 않는다. 생명을 살리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된 희태, 신부가 된 명수, 노동자들을 돕는 노동법 학자 수련, 노숙인으로 떠도는 경수 등 2021년까지 뻗어나간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살아남은 이들의 여러 가지 삶을 담고 싶었어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날의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송 PD)"

영화와 달리 드라마에선 좀체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을 만나기 어려웠던 만큼 "오월이면 꺼내 볼 드라마" "수신료가 아깝지 않은 드라마"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송 PD는 "소재의 민감성보다는 예산과 시대 고증, 미술 등 1980년 광주를 구현해서 영상화하는 작업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그동안 드라마에서 다루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KBS에서 먼저 기획해 빛을 보게 된 경우다. 송 PD는 "2~3시간짜리 영화 '화려한 휴가'나 '택시운전사' 등 제작비가 12부작 '오월의 청춘' 제작비보다 많다"며 "금남로 발포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CG)로 제작하는 등 대부분의 장면을 CG나 세트 촬영으로 구성했다"고 귀띔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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