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알츠하이머

입력
2021.06.15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확산 이후 1년 반 동안 전 세계 확진자가 1억8,000만 명을 헤아린다. 이 짧은 기간에 380만 명 이상이 숨졌다. 흔히 비교되는 100년 전 스페인독감 때 감염자 5억 명, 사망자 5,000만 명이 위안 아닌 위안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바이러스 감염병을 저지할 수단을 가졌다는 점이다. 바로 백신이다. 코로나 백신이 사상 초유의 속도로 개발돼 세계적 접종이 진행되는 것은 백신 개발사에서 전에 없던 일이다.

□ 코로나 백신 선봉장이 의약품 개발의 선두에 선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다국적 제약회사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만한 기술력을 가진 제약사들이 수십 년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복하지 못한 질병이 있다. '조용한 팬데믹'이라 불리는 치매다. 치매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료약을 연구하던 화이자와 존슨앤드존슨이 2018년 신약 개발 중단을 선언한 것은 충격이었다. 5,000만 명이 앓고 있고 수명 증가와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날 만성질병 치료의 희망이 꺾이고 말았기 때문이다.

□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근 알츠하이머 치료약 '아두카누맙'을 승인해 이 무너진 꿈에 불을 지피고 있다. 미국 바이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이 약은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뇌 속 단백질 아밀로이드베타 덩어리를 파괴해 치매 진행 속도를 20% 정도 늦춘다고 한다. 이에 고무돼 30년 넘게 알츠하이머 치료약 개발에 매달려온 일라이릴리도 2년 안에 신약을 내놓겠다고 벼르고 있다.

□ 아두카누맙의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FDA 자문위원회는 지난해 말 아두카누맙 효과의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평가했고 이번 승인에 반발해 몇몇 위원이 사퇴까지 했다. 이 약은 초기 알츠하이머에 효과가 있는데, 조기 진단 기술이 갖춰지지 않은 것도 한계다. 이런 난관을 넘어서더라도 항체 치료약이어서 비싼 약값은 의료 양극화라는 사회적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건강보험체계가 충실한 나라는 보험 재정 악화라는 딜레마에 부닥칠 것이다. 코로나와 달리 치매 정복까지는 갈 길이 멀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