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도 해본 적 없는 36세 ‘청년’ 이준석을 대한민국 최대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대표로 밀어올린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현실화했는지를 두고 시각이 분분하다. 당장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폭넓게 거론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치열한 반성도, 뚜렷한 자생적 쇄신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 보수야당에 대한 세대교체와 혁신 요구가 작동했다는 얘기다.
이준석을 내세워서라도 변화를 추동하지 못하면 내년 3월로 다가온 차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어낼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또다시 현 정권의 연장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보수 유권자들의 위기감이 작동했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당내 선거인단 투표에서 유권자들이 1위 나경원 후보의 40.93%(6만1,077표)에 육박하는 37.41%(5만5,820표)의 지지를 이 후보에게 던진 게 '전략적 선택론'의 근거다.
‘MZ세대’가 응집해 이준석을 밀어 올렸다는 분석도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의 위선과 불공정, 무능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이준석 지지로 결집됐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준석이 ‘우파 포퓰리즘’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때 이른 주장도 나온다.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에 따른 정치 플랫폼의 다양화 및 SNS의 보편화가 대의민주정치의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시각도 힘을 얻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들은 이준석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에 민심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분석일 뿐, 정작 그의 메시지 자체를 주목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이번 경선 전후로 부각된 그의 메시지는 섬광처럼 인상적이지만, 달리 보면 그 자신의 표현처럼 아직은 ‘거친 생각’들이 많아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전적으로 동참하는 태도를 보인 건 새로운 보수의 출발점으로써 공감을 얻을 만하다. 하지만 지론인 ‘공정 경쟁론’이나, 거기서 비롯된 여성ㆍ청년할당제 폐지론 등은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보완할 건지에 관한 지금까지의 사회적 모색을 자칫 퇴행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그는 4050세대의 기득권인 ‘정규직’ 카르텔이 MZ세대엔 완강한 진입장벽이 되고 있는 딜레마적 상황에 대해서도 ‘쉬운 해고’와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과단성 있는 해법을 주장한다. 하지만 쉬운 해고의 부작용에 대한 고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엘리트주의처럼 읽히는 생각들이나, 평화공존론과 정면충돌하는 북한 흡수통일론 등은 냉철한 현실주의 같지만, 또 하나의 이상주의로 전락할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서구의 보수와 진보는 상호 보완적 경쟁을 통해 꾸준한 혁신을 이어왔다.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면 경쟁과 효율을 강화하는 쪽으로, 양극화가 심화하면 포용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상대가 이룬 진전의 토대 위에 개량을 더하는 방식이었다. 지금 이준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지 역시 그의 거친 생각에 대한 전적인 동의가 아닌, 미래를 향한 그의 열정과 지성, 그리고 열린 가능성에 대한 기대에 다름 아닐 것이다.
다행인 건 이 대표가 ‘다른 생각과의 공존’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식 시장주의를 지지하지만, 확고한 경제민주화론자인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훈수’를 적극적으로 구한다든지, 최재형ㆍ윤석열부터 안철수ㆍ유승민ㆍ원희룡에 이르기까지 보수 대선주자 모두의 공정경쟁을 다짐하는 모습에서 보이는 청년다운 담대함이 신선한 것이다. 결국 민심은 이 담대함이 최선의 대선후보를 만들고, 향후 그 대선후보와 이 대표가 현 진보정권의 한계를 넘는 잘 정련된 새 보수이념을 제시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