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어릴 때부터 장난감을 좋아했다. 내부를 뜯어보고 조립하기를 반복했다. 커서도 변하지 않았다. 미대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작가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에게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운 '놀이'였다. 단두대처럼 생긴 ‘호두 깨는 장치’, 와인을 흘리지 않고 따를 수 있는 ‘와인 따르는 장치’는 친구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이상민 작가가 성인이 되어 '놀이'를 벌인 결과다. 이 작가는 “재미 삼아 만들기 시작한 게 전시장에 전시될 줄 몰랐다”며 작품 앞에서 익살스럽게 웃었다.
지난 1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놀이하는 사물’ 전시가 개최되고 있다. 이 전시는 작가를 ‘제작자(maker)’로 칭하고 그들을 집중 조명한다. 네덜란드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가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으로 명명한 데서 시작했다. 전시를 기획한 도화진 학예연구사는 “인류가 하는 활동을 다 노동으로 환원시킬 순 없다”며 “’놀이하는 인간’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다루게 된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상민 작가를 포함해 총 8팀이 참가했다. 신혜림 작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에 가죽 등을 엮어 ‘시간의 비가 내린다’를 선보였다. 주부가 된 그는 경력단절이 두려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신 작가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전시가 없어도 손을 쉬지 않았다”며 “작업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어 행복하다. 때론 힘들지만 저에게 이것은 유희다”라고 말했다.
가구 디자이너인 서정화 작가는 벤치를 블록 쌓듯 쌓아 올린 ‘사용을 위한 구조’를 만들었다. 서 작가는 “일반 가구와 달리 실용성을 중심에 두지 않은 작품”이라며 “빈 공간을 탐색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도예가인 이헌정 작가의 동물 모양 스툴 등도 볼 수 있다. 이 작가는 “흙이 가진 취미적인 특징이 있다. 유희적인 요소가 많다”며 “기능이 있는 사물로 볼 것인지 단순 조형물로 볼 것인지는 관람객의 판단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전시 공간은 이광호, 남궁교, 오현진으로 이뤄진 공간 프로젝트 그룹 엔오엘(NOL)이 꾸몄다.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은박을 채택,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도록 했다. 작가로도 참여한 NOL의 이광호씨는 “벽이 놀이 대상이 되길 바란다”며 “전시된 작품들은 못 만져도 벽은 만져보며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가 끝날 무렵쯤 만날 수 있는 공간에서는 다양한 재질의 재료를 만져볼 수도 있다. 색, 촉감, 형태를 주제로 한 소재들이 한 권의 책 형태로 엮여 있는데, 한 장씩 넘겨 가며 재질을 느껴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