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의 절차

입력
2021.06.15 04:30
21면
편혜영 '목욕'(창작과비평 2021 여름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부모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벼락처럼 충격적인 사건이겠지만, 늦둥이 외동딸인 내게 특히나 두려운 것이 있다. 죽음 이후에 치러야 하는 절차다.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고, 매장 혹은 화장을 결정하고, 영정사진을 준비하고, 부고를 돌리고, 문상을 받는 등의 과정을 혼자 치러내야 한다는 사실이 부모의 죽음을 지레 겁먹게 만들었다.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린 편혜영의 단편소설 ‘목욕’에서 아들 한수가 처한 상황은 이보다 더 난감하다. 아버지의 부음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아버지가 생전 시신 기증을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유일한 가족인 한수와 전혀 상의 없이 진행한 일이었다. 생전 가족 모르게 일을 벌이는 것은 충분히 아버지다웠기에, 한수는 별다른 재고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그런데 난감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장례가 끝나고 6개월 뒤, 아버지의 시신을 인수해 간 병원이 “실습이 끝난 시신을 어떻게 운구해갈 것인지” 문의해온 것이다. 병원이 기증원과 협약을 맺지 않은 탓에 벌어진 일이다. 당연히 병원 측에서 편의를 제공하리라 생각했던 한수는 졸지에 아버지 시신의 운구를 떠맡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한수는 보디백에 싸인 아버지의 시신을 병원에서 챙긴 뒤, 자동차 뒷좌석에 구겨 넣고 화장장으로 향한다.

“아버지와 단둘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좁은 차 안에서. 아버지는 죽었고 몸이 파헤쳐졌고 다시 봉합되어 이제는 완전히 소멸되기 직전이었다. 병원에서 시신 기증에 관한 서약서를 쓸 때만 해도 아버지 역시 김한수와 이런 식으로 헤어질 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하며 서약서를 쓴 것일까.”

아버지의 유골함을 뒷자리에 태운 채 한수는 생전 묻지 않았던 것들을 묻고, 듣지 않았던 것들을 듣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찜질방에 자주 다녔다는 것을, 농담을 잘했다는 것을, 공짜는 싫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은 모르는 아버지의 일화를 주변인들에게 전해 들으면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향한 새로운 이해가 생겨난다. 아버지가 생전 말해주지 않았다고 여겼던 질문에 대한 답이, 이미 자신에게 다 도착해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제야 비로소 한수의 아버지를 향한 애도가 시작된다.

지난주에는 안타까운 부고가 한꺼번에 도착했다. 아들의 생일상을 차려놓고 장을 보러 간 어머니,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러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던 고등학생을 비롯한 아홉 명이 날벼락 같은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어떤 말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음 이후에 도착한 얘기들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불가해한 진실은 남겨두지 말아야,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이 모두 규명되고 납득돼야만 비로소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가 전부 애도의 절차일 것이다.


한소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