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탄생은 경이롭다. 그런데 그 경이로움은 사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개봉을 앞둔 애니메이션 '클라이밍'은 산모를 향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들을 담아낸다.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주인공 세현은 교통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잃었다. 클라이머인 그는 세계 클라이밍 대회를 앞두고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평행세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세현의 전화를 받게 된다. 평행세계의 세현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었지만 아이는 지켰다.
휴대폰 너머 세현의 임신은 클라이머 세현에게 영향을 미친다. 입덧을 하고, 임신 테스트기에는 두 줄이 뜬다. 코치, 그리고 라이벌인 후배는 임신을 이유로 주인공이 세계대회 우승의 꿈에 다가가는 것을 막는다. 평행세계 세현의 상황도 좋지 않다. 아이를 위해 건강 관리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자유를 빼앗기고, 급기야 감금당한다.
주인공 세현은 임신을 원치 않는 캐릭터다. 결혼도 바라지 않는 그에겐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 생명의 탄생을 아름답게만 바라보는 대부분의 작품 속 산모들과 다르다. 무척 현실적이면서도 이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세현이 느끼는 불안감을 통해서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현실 속 여성들의 어두운 내면을 조명한다.
작화는 작품에 흐르는 긴장감이 두드러지게 만들어준다. 날카로운 그림체의 인물들은 표정 변화 없는 목각 인형 같은 인상을 준다. 이는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극을 뒤덮고 있는 기괴함과 잘 어우러진다.
공포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져 있음에도 서늘함을 느끼게 해줄 만한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포적 요소보다는 사회적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여름 무더위를 날려줄 자극적인 영화를 원한다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오는 1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