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은 한국 현대사 내내 우리 국민이 가장 큰 반감을 가진 나라였다. 하지만 젊은 세대로 갈수록 중국을 꺼리는 ‘반중(反中) 정서’가 ‘반일 감정’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국에 대한 호감도 기준으로 역사문제 등 전통적 안보 인식보다 미세먼지, 감염병 등 당면한 민생 위협을 더 중시하는 ‘2030 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일보ㆍ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지난달 25~27일 실시) 결과, ‘북한, 중국, 일본, 미국 등 4개 국가에 대한 감정을 0~100도(높을수록 긍정적)로 표현해 달라’는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 미국은 평균 56.3도를 기록, 북한(29.5도)ㆍ중국(27.5도)ㆍ일본(26.7도)을 제치고 단연 1위를 차지했다.
다만 세대별 응답을 들여다보면 미묘한 차이가 감지된다. 40ㆍ50ㆍ60대 이상의 대일 호감도는 각각 21.7도 26.8도 29도로, 대중 호감도(27.1도 32.8도 34.6도)보다 다소 낮았다. 일본이 여전히 더 싫다는 얘기다. 20ㆍ30대는 달랐다. 20대의 주변국 호감도는 미국(56.1도) 일본(30.8도) 북한(25.3도) 중국(17.1도), 30대는 미국(55.6도) 북한(25.3도) 일본(23.9도) 중국(20.3도) 순으로 조사돼 일본과 중국의 순위가 뒤바뀌었다. 반중 정서가 젊은층의 안보관을 규정하는 핵심 요인으로 부상한 것이다.
중국을 향한 반감의 농도도 2030세대에서 더욱 짙었다. ‘매우 부정적(25도 이하)’이란 응답률을 기준으로 ‘그렇다’는 답변은 40ㆍ50ㆍ60대 이상에서 각각 48.9%, 37%, 32.9%인 반면, 20ㆍ30대에선 각각 68.6%, 61.8%로 나타나 청년층 10명 중 6명꼴로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젊은층의 대중(對中) 인식 변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코로나19 발원국으로 지목되면서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졌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중ㆍ장년층이 느끼는 안보 위협이 ‘군사적’ 분야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젊은 세대는 미세먼지나 감염병 같은 비전통적 안보 이슈에 더 민감하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 김치ㆍ한복 종주국 논란 등을 둘러싸고 양국 젊은이들 사이에 불붙은 감정 싸움도 2030세대의 중국 혐오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어떤 나라가 한국에 위협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비슷했다. 중국을 최대 위협 국가로 꼽은 20ㆍ30대는 각각 43.7%, 36.4%로 40대(25.5%)ㆍ50대(26.5%)ㆍ60대 이상(20.1%) 등 중ㆍ장년층 응답률을 크게 웃돌았다. 심지어 20대는 북한(35.6%)보다도 중국을 훨씬 경계했다.
미중 양국이 각각 주도하는 다자협의체 ‘쿼드(Quad)’와 ‘일대일로’를 놓고도 마찬가지였다. 쿼드 동참을 옹호한 비율은 평균 61.6%로 압도적이었는데, 세대별로도 20대(53.1%) 30대(56.3%) 40대(57.1%) 50대(63%) 60대 이상(71.7%) 등 고르게 지지했다. 이에 반해 ‘일대일로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은 쿼드의 절반 수준인 35.6%에 그쳤다. 세대별 답변을 봐도 20대(22%) 30대(27.9%) 40대(33.6%) 50대(45.9%) 60대 이상(42.6%)으로 조사돼 2030세대의 대중 거리감이 역시 두드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