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폭력을 당했을 당시에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피해의 심각성 여부를 떠나 사건을 인지한 직후 피·가해자를 분리해야 하며, 전담기구를 통한 피해자 보호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 다수의 전문가는 피해자가 과거 학교폭력을 당했을 당시 적절한 조치가 없어 충분한 회복이 이뤄지지 못해, ‘학폭 미투’와 같이 가해자를 고발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20여 년간 중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올해 2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강민정 의원은 지난 5월 인터뷰에서 ‘학폭 미투’에 대해 “학생들의 피해 복구와 치유를 위한 인력 등 환경적인 인프라가 부족한 것 같다”며 “미투는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극복이 안 됐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피해 극복이 피해 학생 개인에게 떠맡겨져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4월 20일 푸른나무재단 문용린 이사장도 기자회견에서 ‘학폭 미투’를 두고 “지금까지 우리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 처벌을 중심에 놓고 부모들끼리 싸우다 결국 경찰과 검찰을 거쳐 판사한테 맡겼다”며 “가해자가 벌을 받게 되면 학교폭력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지만, 피해자의 마음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겨져 미투 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모두 ‘학폭 미투’의 이유로 학교폭력의 해결 과정에 주목했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피해자의 회복은 제외된 채 가해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중심에 두고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서 왜 피해 학생이 보호받지 못하는지 살펴봤다.
기존의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서 학교폭력심의위의 전문성에 대한 지적은 끊이질 않았다. 심의위는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나 징계, 피해학생 보호 여부 등을 심의하는 법정 위원회다.
학교폭력 예방 등의 활동을 하는 민간 기관인 '더나은미래연구소' 이해준 소장은 지난해 5월 아들이 학교폭력을 당한 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심의위의 전문성에 큰 의문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뚜렷한 처벌 기준이 없어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이 피해 학생의 피해 정도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힌 학생과, 전치 2주의 피해를 준 학생에 대해 각각 출석정지 10일과 7일이라는 비슷한 처벌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심의위가 아들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고 이 소장은 말했다. 먼저 당시 심의위가 아들에게 한 질문들이 너무 형식적이었고, 폭행당한 경위를 묻는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다는 것이다. 가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자신과 아들에게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는데도 심의위원장은 반복적으로 화해와 용서를 권고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대구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전담교사로 일했던 A씨는 지난해 하반기 교육청 연수에서 심의위원들이 서류만으로는 제대로 된 정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워 담당 교사를 불러 질문하는 일도 생기고, 사건이 너무 많아 위원들이 개별 사안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가해 학생 이력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거나, 졸업 후 2년이 지나면 없어진다. 피해 학생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치유되지 못한 채 남아 있지만, 가해 학생의 잘못은 공식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 학생과 가족은 가해 학생의 이력이 삭제되는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는 학교폭력 이력을 삭제하는 전제 조건 가운데 ‘반성의 정도에 따라 졸업 시 삭제 가능’이라는 항목에 대해 “이 항목을 평가할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회복되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가해자 학생의 태도에 따라 학교폭력 전담교사가 판단한 뒤 형식적인 심의를 거쳐 대부분 삭제가 된다”며 “담당 선생님은 피해자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이력이 생활기록부에 평생 남는 것은 가해 학생에 대해 제9호 조치인 퇴학 처분이 내려질 때뿐이다. 하지만 중등교육까지는 의무교육이어서 가해 학생에게 퇴학 처분을 내릴 수 없다. 결국 가해 학생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는 사실상 제8호인 전학 처분이다. 출석 정지나 교내 봉사에 해당하는 조치를 받게 되면 가해 학생은 여전히 피해 학생과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고, 오히려 피해 학생이 이를 못 견뎌 전학 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해 학생이 심의위의 조치 결정에 불복하는 바람에 문제가 될 때도 있다. 가해 학생 측이 강제전학 처분에 대해 행정심판을 청구하며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경우 피해 학생과의 분리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3월 10일 “강제전학 처분에 맞서 버티는 가해학생,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보도자료에서 언급한 ‘권투연습 핑계 폭력’사건이 바로 이런 경우다. 강제전학 처분을 받은 가해 학생이 불복하고 버티다 ‘권투연습’을 핑계로 다른 동급생을 폭행해 의식불명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규정된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가운데 강제전학 등의 조치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으로부터 가해 학생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가해 학생 쪽에서 전학을 거부하며 시간을 끌거나 심지어는 해당 기간에 추가 폭력을 가하는 일이 발생하곤 해 피해자 보호와 회복 지원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강균석 교사는 “전학 조치가 나올 정도의 심각한 학교폭력이라도 가해 학생이 이를 거부해 소송에 들어가면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가 중지된다”며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리기도 하는데, 피해 학생은 전학 조치를 받은 가해 학생과 같은 학교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2019년 9월부터 시행 중인 ‘학교장 자체 해결제’는 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통해 심의‧의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제도다. 교육지원청 심의위를 열지 않는 대신 △재산상의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등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며, 피해 학생과 보호자가 자체 해결에 동의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 원만한 합의가 가능한 사안에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A씨는 ‘학교장 자체 해결제’에 대해 “현장에서는 경미한 사안이 아닌데도 무리하게 ‘학교장 자체 해결제’를 적용하기 위해 양측 학부모를 설득해 피해 학생을 더욱 상처 입히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학교장 자체 해결제’를 무리하게 적용할 경우 가해 학생은 자신이 잘못이 없어서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 당당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그것이 피해 학생에게 2차 가해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씨는 “자체 해결로 끝난 사안이라도 관찰 기간을 두고 가해 학생이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즉시 학교폭력심의위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