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선 수도권과 경쟁할 광역권을 만들어야 한다.”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2월 25일 부산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해 한 말이다. 바로 다음날,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와 재정 지원을 골자로 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진혁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가덕도 특별법은 의사결정체계를 무너뜨리는 정치적 행위”라며 “지역균형발전을 목적으로 했지만 정확한 조사 없이 대규모 국책사업을 하는 건 위험하다”고 밝혔다.
취재팀은 예타 면제가 포퓰리즘 수단으로 전락한 이유와 해결책을 알아보기 위해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관계자, 교수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예타 면제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면제 조항의 범위는 조정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예타 면제를 재선 전략으로 이용하는 관행 속에서 지역균형발전이나 필수시설 건립 등 사업 본연의 목적 대신 지역 민원 사업을 균형 발전과 등치시키는 나눠먹기식 포퓰리즘 행태가 만연하고 있죠.”
최근 정치권에서 예타 면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를 묻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이렇게 답했다. 한마디로 정치인들이 예타 면제를 통해 지역 민원을 해결한 것처럼 홍보해 성과물로 삼을 유인이 크다는 의미다. 그는 예타 조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이다.
윤 의원은 예타 면제의 자의적 활용을 막기 위해선 면제조항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가재정법 제38조 제2항 제10호다.
그는 10호에서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예타 면제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긴 하나 과도한 재량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 기준이 필요한 항목을 개선해 자의적 활용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예타 면제의 내용 등을 담은 ‘가덕도 특별법’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자 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다.
장 의원은 “(가덕도 특별법은) 민주당 출신 시장의 성추문을 덮고 선거에서 이기려는 민주당과 지역적 권력 기반이 PK(부산·경남)인 국민의힘이 야합한 사건”이라며 “집권당이 특정 지역에 대규모 국가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야당 역시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이 선례가 돼 향후 무분별하게 예타 면제를 추진한다면 거대 양당 중 누가 이를 견제하고 비판할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이는 국가 재정 측면에서 국민의 불행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 당시 4대강 사업 예타 면제를 비난하며 대규모 SOC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했었죠. 그런데 집권당이 되자 입장을 바꾼 것은 ‘내로남불’입니다.”
한편 지방을 중심으로 예타 면제를 허용하되, 이것이 과잉투자로 연결되지 않도록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은 수도권 집중화가 심한 나라로 예타 조사를 하면 수도권만 사업 선정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지방을 중심으로 예타 면제를 일부 허용하면 국토균형발전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홍 의원은 “예타 면제는 미래 사회의 방향성을 보완할 수 있다”며 “다만 예타 면제 제도가 과잉, 중복 투자로 연결되지 않도록 시민사회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예타 면제를 받은 사업이 실질적으로 지역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비수도권에 철도나 도로를 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꼭 지역의 발전에 도움이 될 거란 보장은 없다”며 “KTX 덕분에 서울에서 강릉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됐지만 지역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사람은 줄었다”고 말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놓은 철도가 오히려 수도권 집중화만 부추기는 이른바 ‘빨대효과’로 나타난 것이다.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이라며 철도·도로만 놓는 행태를 비판했다. 신 단장은 “오히려 공공의료시설, 어린이 유치원 등이 지역에 더 도움이 될 텐데 왜 토건 사업만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SOC 사업을 유치하면 집값에도 도움이 되고 더 많은 표심을 잡을 수 있으니 이것만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익명을 요청한 KDI 전 연구원 A씨는 문제가 되는 제38조 제2항 제10호를 면제 기준에선 빼고 대신 예타에서 가중치를 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지역균형발전’ 항목이 예타 평가 기준에도 포함돼 있고, 면제 조항에도 있어 이중으로 평가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예타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3가지 요소를 종합해 타당성을 결정한다. 그중 ‘지역균형발전’ 항목은 2019년 법 개정으로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다. A씨는 “현 단계에서도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사업 추진을 돕고 있는데, 굳이 예타 면제에서 중복될 필요가 없다”며 “예타 면제 조항에서 지역균형발전을 빼고, 예타에서 가중치를 강화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결과 표기 방식을 수정해 예타를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박현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은 “경제성 평가 결과가 수치로 나오다보니 이것을 마치 성적표처럼 받아들인다”며 “(예타 평가) 결과를 등급으로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현행 제도처럼 비용 대비 편익(B/C) 평가 결과 등을 수치로 내지 말고, A~C 등급으로 평가해 융통성 있게 사업 추진을 결정하자는 취지다.
‘공공정책의 성공 사례.’ 세계은행은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된 예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KDI에 따르면 1999~2019년 예타를 통해 144조 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거뒀다. 사실상 예타가 국가재정의 수문장 역할을 해 온 셈이다.
예타가 도입된 지 23년, 상황은 바뀌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대표적 사례다. 국토부가 가덕도 신공항이 경제성과 환경성 등 7개 항목에서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음에도 지역균형발전을 명목으로 가덕도 특별법이 통과됐다.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졸속 추진’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전문가들은 추후 특별법 방식의 국책사업이 들불처럼 추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영철 단장은 졸속이 된 예타 면제의 가장 큰 피해자를 ‘미래세대’로 꼽았다. 토건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혈세 낭비의 빚은 우리가 아닌 미래세대가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못사는 첫 세대인 것도 모자라 나랏빚까지 떠안게 됐으니 얼마나 절망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