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철거 건물 붕괴 참사 나흘째인 12일 광주 동구청 주차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어처구니 없는 참사에 분노하면서도 "남일 같지 않다"며 안전 불감증 사회에 대해 걱정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8시 30분쯤 분향소를 찾은 배모(77)씨는 산을 배경으로 미소 짓고 있는 친구 이모씨의 영정사진을 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고인과 자주 연락했다는 배씨는 며칠째 연락이 없어 안부가 궁금하던 차에 갑작스럽게 문자메시지로 친구의 부고 소식을 알게 됐다.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겨우 입을 열었다. "등산을 좋아해서 나랑 산에도 많이 갔어. 사고 하루 전에 만나고 못 봤는데, 너무 섭섭하제. 이젠 보고 싶어도 볼수가 없네."
남일 같지 않아 분향소를 찾았다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붕괴 건물이 덮친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귀가하곤 했다는 김세라(35)씨도 이날 분향소를 찾았다. 정류장 인근 아파트에 산다는 김씨는 사고 시각 불과 20분 전에 정류장에서 내려 집으로 갔다고 했다. 김씨는 "사고 직후 주변에서 연락이 와서 뛰어나가보니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며 "버스기사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하는데, 희생자들은 단순히 그날 그 버스를 탔거나 운전했을 뿐인데, 왜 피해자들끼리 미안해야 하느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20분 차이로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이 들자, 김씨는 사고 후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전남 화순에서 광주로 매일 사고 현장을 거쳐 출근한다는 40대 직장인 김태훈씨도 사고 당일 오전 출근하면서 사고 현장을 지났다. 그는 "사고 현장을 지나갈 때마다 건물 뒤에 토사를 쌓아놓은 모습이 불안해 보였는데, 그날 오후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음이 철렁 내려 앉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딸과 분향소를 찾은 류지수(44)씨는 "이번 사고는 세월호 참사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딸 아이가 사람들이 왜 죽은거냐고 물어 보는데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사망자들의 상주를 자처해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박헌조 광주 동구 새마을지회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지회장은 "광주 전역에 재개발 지역이 너무 많다. 지역 조합장 가운데 이번 사건 원인으로 지목된 재하청 의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날 조선대 장례식장에선 이번 사고 희생자에 대한 첫 발인식이 엄수됐다. 가장 먼저 발인이 치러진 피해자는 요양 중인 어머니를 만나러 아버지와 함께 사고 버스에 탔다가 생사가 갈린 서른 살 딸 김모씨였다. 참사 사망자 유족 전원이 11일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부검에 동의하면서, 사망자 9명 중 4명이 이날 발인식을 치르고, 13일에는 3명, 14일에는 2명이 영면에 든다.
붕괴 참사는 지난 9일 오후 4시 22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사업지의 버스 정류장에서 발생했다. 철거 공사 중이던 지상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정류장에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 1대가 매몰돼, 버스에 타고 있던 17명 중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