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바람은 태풍이 됐고, 이준석 현상은 구체적 현실이 됐다.
1985년생 청년의 제1야당 대표의 등장은 한국정치의 일대 사건이다. 이준석 개인의 성취만은 아니다. 세대교체를 향한 누적된 갈망, 탄핵 흑역사와 완전 결별하고 집권하려는 보수 세력의 열망이 이준석이라는 영리한 정치인을 매개로 폭발한 결과다. '왜 이준석인가'보다 '왜 세대교체인가'가 더 깊이 물어야 할 질문이다.
국민의힘은 11일 전당대회를 열어 이준석 대표를 선출했다. 30대가 주요 정당의 대표가 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당대표와 함께 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최고위원단 선거에서도 여성·30대·비(非)영남 출신이 약진했다. 보수 진영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판'을 까는 데 일단 성공한 것이다.
이 대표는 당원 여론조사(70%)와 일반국민 여론조사(30%)를 합산한 방식의 경선에서 득표율 43.82%를 기록해 당대표 후보 5명 중 1위를 차지했다. 그는 대표 수락연설에서 "'여성다움' '청년다움' '중진다움' 등 '○○다움'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던지고 공존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양성과 유연함을 당 운영의 원칙으로 제시한 것이다. 당대표가 직권으로 임명하는 게 관행이었던 당대변인부터 '토론 배틀'을 통해 공개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 당선은 당심보다는 민심의 선택이었다. 나경원 전 의원이 당원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1위를 했으나,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나 전 의원보다 2배 이상 득표한 이 대표가 최종 승자가 됐다. 물론 정통 보수와 대구·경북(TK)이 주축인 당원들이 '경륜'을 앞세운 나 전 의원에게 몰표를 주지 않은 것도 국민의힘 입장에선 혁신이다. 나 전 의원의 최종 득표율은 37.14%였고, 주호영 의원(14.02%), 조경태 의원(2.81%), 홍문표 의원(2.22%)이 뒤를 이었다.
이 대표의 당선으로 장유유서의 원리로 작동하는 ‘오륙남’(5060세대 남성) 중심의 낡은 정치가 허물어지고 청년 당사자 정치가 활기를 띨 가능성이 열렸다. 세대교체가 시대정신으로 확인된 만큼, 내년 대선에서도 '젊음'과 '개혁'이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이 대표의 승리에 '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정치적 몸집을 키우는 과정에서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을 비롯한 분열적 에너지를 양분 삼았고, '공정은 곧 능력주의'라는 세계관을 드러냈다. 이준석식 성공 방정식이 확산되면 '트럼피즘'과 '극우 포퓰리즘'이 한국사회에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가 '마이너스의 정치'를 '플러스의 정치'로 바꾸지 못해 정치 지도자로서 실패한다면 간신히 동력을 얻은 세대교체 바람이 꺼질 것이다. 이 대표가 보다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최고위원 선거에선 여성 초선인 조수진, 배현진 의원이 1, 2위를 차지했고, 김재원, 정미경 전 의원도 당선됐다. 청년 최고위원에는 김용태 경기 광명을 당협위원장이 뽑혔다. 여성 선출직 최고위원이 3명이나 포진하게 된 것도 한국정치에선 이례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