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돈, 돈값 하는구나!

입력
2021.06.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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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정리정돈 전문가라는 직업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내 물건을 내가 정리해야지 어떻게 남에게 맡길 수 있냐?” “누가 정리정돈을 돈 주고 하냐?”였다. 하지만 이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새집에 대한 기대는 이삿짐이 들어가는 순간 사라지게 된다. 이사하면서 옮겨온 짐들이 뒤죽박죽되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말이다. 기존 집과 구조도 달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것이다. 짐 사이에서 물건을 찾다보면 두 번 다시 이사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굳이 이사가 아니더라도 거주 중에는 또 어떠한가?

살아온 세월만큼 곳곳에 묵은 짐들이 켜켜이 쌓이고 살림이 늘어난다. 가끔 사람이 사는 집인지 물건보관소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집도 많다. 그나마 이사 후에는 이사 핑계로 정리서비스를 받겠다고 하면 이해해준다. 하지만 거주 중에는 일단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정리를 해야 하냐는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낯선 전문가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창피하다며 선뜻 전화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진정한 전문가라면 정리가 안 되어서 힘들어하는 고객을 보며 정리를 왜 이렇게 못하냐며 타박하거나 흉을 볼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공간 속 물건을 사용하기 편리하고 쾌적하게 만들어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창피하다는 이유로 정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너희들이 성인이 될 때엔 물을 사 먹게 될거야”라고 하셨을 때엔 ‘수돗물도 잘 나오는데 굳이 물을 돈 주고 사 마실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물 사 먹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우리도 이제는 정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정리서비스를 처음 접하는 분들 중 어르신들은 본인들이 누리지 못한 혜택을 자녀분들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정리하느라 고생할 자녀가 안쓰러워 허락은 하셔도 비용을 지불하고 정리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신 어르신들은 결과물을 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하신다. 하지만 정리가 되고 나면 자녀들보다 더 좋아하신다.

예전에 한 어머니께서 정리된 걸 보시면서 "아이구야~ 좋구나. 돈값 했다"라며 연신 감탄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시대에 따라 직업이 변하듯 정리전문가는 이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직업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니멀라이프가 한참 유행일 때는 열심히 물건 버리기에 열중하다 그 물건이 필요한 순간이 되면 재구매를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정리정돈은 단순히 물건 정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리정돈을 통해 물건의 제자리를 만들고 사용 후 제자리에 놓는, 유지되는 습관을 반복하면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습관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도구가 된다. 그래서 정리정돈 서비스를 한 번도 안 받아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받아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종 부리면 말 타고 싶다는 속담처럼 점점 편해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 내가 잘하지 못하거나 감당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는 일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한 것이다.



김현주 정리컨설턴트·하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