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속 자연의 풍경에 ‘멍 때리기’

입력
2021.06.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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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생각 없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불멍’이 한창 유행이다. ‘멍 때리기’는 2014년 한 행위 예술가가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계 최초로 ‘멍 때리기 대회’를 개최하면서 화제가 됐으며 그 후 대중 속으로 점점 파고들었다. 이제는 산멍, 비멍, 숲멍 등 아무 곳에나 갖다 붙일 정도로 친숙해졌고 다양한 멍 때리기가 생겨나고 있다.

‘멍 때리기’가 유행하는 건 그만큼 현대인들의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최근에는 비가 자주 내리자 비멍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직접 비멍을 체험하고 싶어 남양주 ‘물의정원’이라는 수변공원을 찾았다. 북한강 끝자락에 위치한 이 공원은 강변으로 잘 정비된 산책길과 쉼터가 있어 비와 강물을 보며 비멍과 물멍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벌써 사람들은 공원 벤치나 그네에 앉아 멍 때리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들 틈에 끼어 비멍과 물멍을 해보니 근심이 사라지면서 정신이 맑아졌다. ‘번뇌’를 씻고 물의정원에서 나와 공원 입구로 향하던 중 가운데가 텅 빈 큰 액자를 만났다. 호기심에 다가가 액자 틀과 주변 풍경을 한 컷에 담아보았다. 그러자 액자 속에 갇힌 자연은 보란 듯이 한 폭의 풍경화가 되었다. 자연이 그린 그림에 취해 한동안 ‘그림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왕태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