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父子, 심장이식 받기 전 인공 심장격 '심장 보조 장치(LVAD)'로 새 삶

입력
2021.06.10 10:09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심장병을 앓으면서, 같은 인공 심장 격인 ‘좌심실 보조 장치(Left Ventricular Assist DeviceㆍLVAD)’ 삽입 수술을 받은 아들이 선친이 받은 심장이식을 대기하는 드문 사례가 나왔다.

비후성(肥厚性) 심근병증 말기 환자인 김모(58)씨는 지난 2일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에서 좌심실 보조 장치 삽입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김씨는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에 대기자로 등록해 심장이식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2004년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에서 선친이 앓았던 심장 내 좌심실 벽이 두꺼워진 ‘비후성 심근병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실신하는 등 부정맥 증상이 악화하자 2014년 7월 박희남 심장내과 교수에게 몸속에 제세동기(除細動器)를 넣는 삽입형 제세동기 시술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말기 비후성 심근병증에서 완쾌하려면 심장이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심장이식 대기 기간이 길어져 김씨는 지난 4월 19일 윤영남 심장혈관외과 교수에게서 제3세대 심장 보조 장치(HeartMate3) 삽입 수술을 받은 뒤 퇴원했다.

김씨의 선친도 1995년 비후성 심근병증을 진단받아 2000년에 당시 제1세대 심장보조 장치(HeartMate1)를 삽입한 뒤 다음 해 11월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김씨의 선친은 강석민 심장내과 교수에게 17년간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으면서 건강하게 지내다가 2018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인공 심장 격인 좌심실 보조 장치(LVAD)는 심장이식을 대기하고 있는 심장병 환자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심부전 환자는 심장이식을 받아야 정상 생활이 가능한데 이식을 받으려면 6~18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문제다.

심장이식을 대기하다가 목숨을 잃는 환자도 적지 않다. 심장 기능이 떨어져 콩팥ㆍ간ㆍ폐 등 다른 장기까지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LVAD 이식 수술 대기자가 약물 치료를 제대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수술을 받지 못하면 2년 이내 90%가 목숨을 잃는다. 2017년 심장이식 대기자는 559명이었지만 실제 심장이식을 받은 사람은 184건에 그쳤다(질병관리청 장기이식관리센터).

LVAD는 혈액을 온몸에 순환시키는 심장 좌심실 기능을 대신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준다. 좌심실의 피를 기계로 뽑아낸 뒤 모터로 돌려 대동맥으로 다시 보낸다. 따라서 심부전에 의해 저하된 심장의 기능을 보조하는 펌프 역할을 한다. 전깃줄이 몸 밖으로 나와 구동되면서 전선이 피부를 통해 나와 배터리나 다른 전원 장치와 연결돼 작동한다. 이 때문에 심장이식 전 장기간 대기할 수 있게 해준다. LVAD는 2018년 9월 건강보험이 적용돼 750만 원 정도만 환자가 부담하면 된다.

김씨는 LVAD 삽입 수술 후 “편하게 숨 쉬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다. LVAD를 삽입하기 전에는 헉헉거리며 숨을 쉬고 살았는데, 삽입 후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편히 숨 쉴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김씨는 “심장이식을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60세가 되기 전에 심장이식을 받아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선친께서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이식을 받으신 후 17년을 행복하게 사셨다. 나도 20년 이상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살 것”이라고 했다.

김씨 주치의 오재원 심장내과 교수는 “아버지와 아들 모두 결국 유전성, 가족성 질환을 앓았다. LVAD는 심장이식을 받기 전까지 생명줄 역할을 잘해 낼 것”이라며 “심근병증 환자가 가족 중에 있다면 다른 가족들은 증상이 없더라도 미리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