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몸 상태를 알아보고 아플 때 병원을 찾는 것처럼, 우리나라에 있는 다양한 문화재들은 박물관‧미술관의 보존 부서나 국립‧공립‧사립 문화재 보존기관 등을 통해 상태 점검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에 있는 한국문화재들은 어떤 상황일까?
2021년 4월 현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 통계에 따르면, 세계 22개국에 20만4,693점의 한국문화재가 있다. 고문서, 회화, 도자, 공예품, 의복 등 다양한 종류의 문화재들이 유명 박물관‧미술관에서부터 작은 기관에까지 널리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 박물관들의 한국문화재는 타 문화권 문화재들과 비교해 소장 수량이 적고, 알려지고 연구된 기간이 짧아 관심이 적은 편이다. K컬처(K-culture)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문화재 분야에 있어서 한국문화재에 대한 현지의 관심은 여전히 적다. 박물관 내에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함께 묶이곤 하는 중국과 일본은 해외에서 자국 문화를 알리는 데 문화재 분야를 꾸준히 지원해 왔기에 문화재 수량과 관련 분야 연구 인력이 탄탄한 반면, 한국문화재는 수량 면에서도 전담 큐레이터, 한국문화재 보존가 등 관련 인력 면에서도 상당히 부족하다.
현지에서의 적은 관심은 박물관 차원에서의 적은 지원으로 이어진다.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한국문화재가 현지에서 활발히 전시되거나 활용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시나 활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재의 보존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기회가 적다 보니 깊은 수장고에서 보관된 채 선보일 날만을 기다리는 문화재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박물관 내에서는 한정된 예산으로 우선순위에 따라 보존처리 대상이 정해지다 보니, 현지에서 관심이 적은 문화재들은 치료를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잦다. 그러다 보니 수장고 어딘가에서 아프고 병들었어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상태가 더 심각해지는 문화재들 또한 많다. 특히 종이나 직물로 이루어진 문화재의 경우, 시간에 따른 변형이나 훼손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 내에 적합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본래 모습을 영원히 잃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위의 글은 미국 스펜서 미술관의 크리스 얼컴스 큐레이터가 재단의 미국 소재 ‘곽분양행락도’ 보존처리 특별 공개 연계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던 내용의 일부이다. 이렇게 놀랍게도 수장고에만 보관된 채 잊힌 한국문화재 한 점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고, 미술관은 작품의 열악한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재단에 보존처리 지원 신청을 하였다. 재단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심사 등을 거쳐 지원을 결정하였는데, 이때 국외문화재를 치료하는 일의 의미와 필요를 깊이 이해했던 민간 병원 기업 ‘미르치과네트워크’의 후원까지 더해져 보다 안정적인 지원이 가능했다.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도움을 기다리는 문화재들이 많기에, 이렇게 해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 보존에 협력 지원하는 민간 기업의 도움은 언제나 소중하다.
스펜서 미술관의 ‘곽분양행락도’ 병풍은 1년여간의 보존‧복원 작업을 거쳐 무사히 옛 모습을 되찾았다. 방치됐던 문화재는 국내로 이송되어 전문 보존가들의 과학적인 분석과 섬세한 손길을 거쳐 오랫동안 찌든 때를 벗었고, 해지고 망가진 여러 손상 부분들 또한 정교한 작업을 통해 메워지고 수리되었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수장고에서 오랜 시간 잊힌 우리 문화재와 다시 연결되었다.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유물의 생명을 연장하고 다친 곳을 치료해 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보존처리가 완료된 후 건강을 되찾은 유물들은 다시 저마다의 새로운 시간과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전시 및 연구를 통해 교육 등 각종 활용 사업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공유되고, 이 과정에서 존재의 의미가 다시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스펜서 미술관 소장 ‘곽분양행락도’는 보존 작업 완료 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특별 공개되었고, 미국 캔자스로 돌아가서는 두 번의 특별 전시를 통해 현지에서 널리 소개되었다. 스펜서 미술관 사례를 통해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지원이야말로 수장고에서 우리 문화재를 꺼내 빛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알았다.
보존‧복원이 필요한 국외기관 소장 한국문화재는 재단에서 실시하는 지원 공모나 조사를 통해 관련 사업비를 지원받는다. 처리가 끝난 후에는 국내외 전시 및 심포지엄 등을 통해 대중에 공개된다. 대상 문화재의 상당수는 변형이나 손상이 잦은 회화류이고, 그 밖에 가구와 도자 등의 공예품, 의복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 처리 방식 또한 다양한데, 국내 전문 보존기관에 의뢰되는 경우가 많으나, 문화재의 상태를 고려하여 이동이 쉽지 않은 경우에는 해외 현지에 우리 전문가를 파견하거나 현지에서 역량 있는 보존 기관에 의뢰하여 진행하는 등 문화재를 최우선으로 하여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것을 복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문화재라면 전문적으로 보존 처리하고 수리 복원해 온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문화재의 보존‧복원 작업은 기계만을 이용해 뚝딱해낼 수가 없다. 우선 손상된 문화재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면밀히 분석하고 다양한 자료와 사례를 참조하여 처리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전문 보존가의 섬세하고 정교한 손끝에서 문화재 치료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처리 대상 문화재를 잘 이해하고 적합한 방식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문화재보존가의 역할은 이 분야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화재 보존 분야에서 앞서가는 나라들에서도 한국문화재 보존은 여전히 생소하고 관련 전문 보존가는 더더욱 희소한 상황이다. 재단은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2017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해외 보존가 대상 한국문화재 보존‧복원 교육 워크숍’을 실시하고 있다. 역량을 갖춘 전문 보존가로 성장하고 정식으로 활동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학습과 경험의 시간이 쌓여야 한다. 워크숍은 이론과 실습 교육을 통해 해외 보존가들에게 동아시아 문화재라 해서 다 같은 형식이 아님을 알리고 한국문화재 고유의 제작 방식과 보존처리 방법 등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려는 데 그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재단의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지원은 사업비 지원이라는 재정 지원 방식만으로 운영되고 있었기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위급한 상황에 놓여 보존처리가 시급한 국외 한국문화재를 빨리 이송하여 처리할 전문 공간이 없다는 것은 재단이 지원 사업을 실시하는 데 있어 장벽이 되고 있다. 국내 보존기관들은 국내에 있는 문화재들의 보존처리를 중점으로 진행하기에, 도움이 필요한 국외문화재를 적극적으로 파악하여 어느 때고 신속한 보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재단이 운영하는 ‘국외문화재 보존처리 전문 공간’이 필요하다.
근래에 들어 외국의 박물관‧미술관 등에서는 소장 유물의 보존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오픈 스튜디오 방식의 보존 전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관람객들이 박물관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공간과 작업을 바깥으로 꺼내 소개함으로써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더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빛이나 온도에 민감한 유물들이기에 적절한 환경을 고려하여 이러한 작업이 공개되고 있다. 하나의 유물을 보존‧복원하는 과정의 일부를 관람객들이 간접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그 문화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이렇듯 국외문화재 전문 보존 공간 마련은 단순 처리 지원을 넘어 더 많은 연계 연구와 활용을 가능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