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목재, 구리 같은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하면 국내 소비자물가는 0.2% 오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급등한 원자재 가격 오름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향후 경기회복 과정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커질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9일 한국은행의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배경 및 국내경제에 대한 파급영향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 원자재 가격은 지난해 3~4월 원유를 중심으로 급락했지만 이후 빠르게 상승해 거의 모든 품목이 코로나19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거나 웃돌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5월 철광석 평균가격은 2019년 평균가격 대비 129.1%, 목재는 무려 301.3%나 뛰었다. 구리(68.8%), 옥수수(81.9%), 알루미늄(35.6%) 오름세도 가팔랐다.
글로벌 경기회복 과정에서 수요와 공급 충격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가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제조업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철광 수요가 급증했고 주요국의 이동제한 조치 완화 등으로 원유 수요 역시 크게 늘어났다.
동시에 미국의 셰일 생산기업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생산을 축소한 데 이어, 칠레와 페루 등에선 구리 매장량이 높은 남미지역을 중심으로 폐쇄되는 광산이 늘었다. 기상이변에 따른 작황 부진도 옥수수 등 주요 곡물 생산을 제한했다.
한은은 원자재 가격이 추세적으로 10% 상승할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는 1년 뒤 최대 0.2% 오를 것으로 봤다. 다만 원자재 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했다면 물가 상승률은 0.05%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성 한은 조사국 물가연구팀 차장은 "향후 경제활동 정상화 과정에서 생산자물가나 기대인플레이션 경로를 통해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물가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원자재 가격이 슈퍼사이클(장기적인 가격상승 추세)에 진입할 지를 두고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번 가격 상승은 코로나19를 둘러싼 일시적, 추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김 차장은 "친환경 투자 확대를 배경으로 한 '그린경제'가 전반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을 주도할 지 더 지켜봐야 한다"며 "향후 중장기 방향성은 주요국 친환경 정책의 가속화 여부 등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