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점진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때가 있다. 그게 혁명이다. 비트코인도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 청교도 혁명 같은 삶의 기본을 근본적으로 바꾼 그런 혁명이다.
유럽에서는 왕조의 교체가 자주 일어났다. 왕을 쫒아낸 뒤에도 왕족 중에서 왕을 모셔왔다. 왕권신수설이라는 생각에 모든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었다.
공화정의 수호자였던 나폴레옹은 나중에 황제가 됐다가 결국 폐위되었고, 프랑스에는 자유, 평등, 박애의 공화정이 뿌리내렸다. 프랑스 혁명은 그래서 위대하다. 결국에는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개개인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천부인권론으로 공화정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혁명도 위대하다. 정부가 없는 화폐, 중앙은행이라는 신뢰기구가 없는 화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추구하는 철학과 장점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 관계자나 경제학자들은 이 장점 때문에 오히려 비트코인을 비판한다.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고 내재가치가 없다고.
그런 비트코인이 법정 화폐의 지위에 올랐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것이다. 인민이 만든 인민의 돈이 마침내 국가의 돈이 된 순간이다.
현실을 보자.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가 마구 살포되고 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일어났다. 잘못은 월가에서 했는데 왜 피해는 국민이 봐야 하는가라는 울부짖음이었다.
월가의 탐욕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러왔다. 금융 시스템이 붕괴됐다. 살아남기 위해서 월가 금융기관들은 해외에서 자산을 팔아 미국으로 달러를 송금했다. 그러자 달러화 환율이 치솟았다. 우리나라 등 이머징 국가들은 미국 자본의 철수로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졌다. 사고는 미국에서 터졌는데, 이머징 국가들이 유탄을 맞았다.
환율이 치솟아 물가가 폭등했다. 서민들의 고통이 컸다. 자산 가격도 폭락과 폭등을 반복한다. 스마트 머니라는 기관투자가나 거액 자본가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자산을 키웠다.
금융위기가 터지면 일자리가 없어진다. 반면 자산가치는 치솟는다. 부의 불균형이 커진다.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격차도 벌어진다. 돈에 접근하기 쉬운 사람과 거대 기업들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살포한 돈을 이용해 부를 늘린다. 지금 우리 청년들이 느끼는 좌절감도 본질적으로 이런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삶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통화정책의 실패 때문이다. 한때는 효과를 봤지만 이제는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변질됐다.
중앙은행은 중간자인 은행을 통해 돈을 살포한다. 은행이 보유한 국채를 자본시장에서 사들인다. 돈이 시중에 풀린다. 이 돈은 대부분 돈 많은 기업과 개인에게 간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돈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부자들에게 풀린 돈은 주식을 사고, 부동산을 사는 데 들어간다. 자산가격이 치솟는다.
자산가격이 오르는 것은 돈과 금융시스템 때문이다. 돈이 풀리고 이자율이 떨어지면 할인율이란 마법을 통해 자산가격은 저절로 오른다. 자산가격 상승이 소비를 통해 경제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낙수효과는 환상이다. 일자리는 늘지않고 자산가격 상승으로 부익부 빈익빈, 경제적 불평등만 심해진다.
같은 일이 지금 반복되고 있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러 살포를 통해 1조 달러 수준이던 자산 규모를 4조 달러로 늘렸다. 팬데믹 이후 또다시 8조 달러 수준으로 확대했다. 연준의 자산은 달러를 찍어 미국 정부 채권을 사는 것이다. 그만큼 달러를 찍어내 뿌렸다는 얘기다. 하염없이 치솟는 원자재 가격, 물가, 부동산 가격. 자산 보유자는 즐기고 있지만 자산이 없는 사람은 앉아서 가난해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누군 벼락부자가 되고 누군 벼락거지가 된다. 이유도 모른 채. 월급만 빼고 모든 물가가 다 오르는, 일만 하는 사람은 가난해지는 시대가 오래 지속되고 있다.
비트코인을 공격하는 ‘비트코인의 적들’은 이 부분부터 설명해야 한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돈. 하염없이 가치가 떨어지면서 국가 간 불평등과 부의 격차를 확대시키고 있는 통화정책.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채 폭탄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지부터 얘기해야 한다. 특히 경제 시스템 안정이란 명분으로 자산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집을 사기도 힘들고, 노력해도 성공하기 힘든 사회에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는 이미 오고 있다. 혁신적인 기업가들의 노력으로 비트코인은 가치저장수단으로 또 교환의 매개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엘살바르도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기로 한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트위터의 프로필 사진을 비트코인 지지자의 상징인 '레이저 아이'로 바꿨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달러에 대한 대안으로 비트코인 지지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요즘 코인마켓에서는 탈중앙화된 금융, 즉 '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가 뜨겁다. 기존 금융을 어디까지 대체할지는 모른다. 토큰 소유자들은 디파이에 예치하고 높은 리워드를 받고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이자율과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주식 등 기존의 경제시스템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코인에 투자하는 젊은이들 중에는 코인의 장단점을 꿰뚫어 보고, 시장의 정보 격차를 이용해 무위험 거래를 하는 프로들도 있다. 어려운 삶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프랑스 혁명 때 참여한 사람들이 천부인권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했겠는가? 그들을 무지몽매한 사람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부랑아, 농민, 노동자, 퇴역군인, 시민 등 그냥 그 사회를 이루고 있던 사람들이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논리적·이념적 근거를 제공했는지 모르지만 구체제의 삶의 질곡 속에서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들이 혁명 전선의 선봉에 섰다.
지금이 그렇다. 코인 투자자들을 철없는 아이들 또는 투기꾼, 사기꾼으로 모는 관료나 학자 등 엘리트들이 있다. 스스로 자문해 보라. 청년들에게 나는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나는 기득권자가 아닌가?
비트코인 혁명은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다. 경제 안정이란 이름으로 부의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미래의 희망을 앗아가는 무능력에 대한 자구책이다. 언제까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돈을 살포하는 통화정책이 불가피했다고 변명만 할 것인가? 자산가격을 폭등시켜 부의 불평등을 확대한 것이 정당하다는 것인가? 열심히 일한 사람은 가난해지고, 돈을 끌어와서 주식과 부동산을 산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불공정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비트코인은 기존 통화정책과 중앙은행 화폐에 대한 혁명이다. 그렇다고 코인 투자자들이 기득권자의 것을 직접 빼앗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경제 영역을 만들면서 새로운 부의 질서를 만들고 나누고 있다. 메타버스(Metaverse), 현실세계와 다른 가상세계의 신질서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폄훼하지 말라.
역사는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자들이 굴리는 수레바퀴다.